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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7호]  2020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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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그립고 아련한 설 풍경
[[제1674호]  2020년 1월  25일]

해마다 오는 설이지만매년 조금씩 달라진 설이 되어 오고 있다요 몇 해 동안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기증 나게 달라지면서 설과 함께 정월이 왔었다

설을 지그시 음미하는 아기자기함과 봄을 다소곳이 기다리는 설렘이 아롱져 있던 그런 설은 갈수록 퇴색하고감내키 어려운 메마름이 입술을 타게 하는 잿빛 설이 오고 있다.

TV 화면의 광기신문 삼면의 절로 눈이 감기는 처절한 기사와 화보오는 새해 도착(倒錯)된 문명이 또 얼마나 난무할 것인가사람에게서 사람다움을 앗아가려는 끈질긴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자연애와 인간애의 짙은 그리움을 반추하며 있어야 할 내일과 그 다음 내일들이 멀기만 하다

세상이 온통 격음화 현상을 빚고 있는 이 흐름 속에서애오라지 그리도 기다리던 우리 민족 고유의 설날이 다가왔다설날로 시작하는 삼백 예순 닷새 경자년 새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올지 한없이 이어진 사구(砂丘)처럼 두렵기도 하다

아직은 빨갛게 핀 철쭉꽃이 없어도 좋다이운 풀포기 사이사이에 보송보송한 쑥 이파리가 돋아날 때까지는 쑥국의 향긋한 맛을 미루어 두어도 좋다반가운 매화가 어느 곳엔가 필 때까지 겨우내 기다리며 참아도 좋다분명 봄은 바람 불고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을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신의 선물이다

자연과 사람이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따사로운 마음들로 이어지며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봄을 위해서라면 이 겨울이오는 정월이암만 춥고 지루해도 내사 정녕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어릴 적 내 고향 정월이 되면 온통 날마다 축제였다아니 섣달그믐이 되기 훨씬 전부터 마을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섣달그믐이 가까워 오면 조청을 만들고 흰떡을 만들어 떡국을 끓여 먹는다설날 하루 전쯤 인절미와 쑥떡을 만들고 섣달그믐 저녁에는 시루떡을 만든다

나물 떡 산자 등 설빔 음식이 다 장만되면 식구들은 모두 목욕을 한다큰 무쇠 가마솥에 물을 데워 묵은 때를 벗겼다설 동안 편히 놀기 위해서는 특히 쇠죽 감을 많이 썰어 두어야 하고 장작 땔감 등을 장만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섣달 그믐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그것은 산에 가서 나무하는 것이다섣달그믐날 나무 하는 놈은 내 아들놈이라는 말이 있다욕 중에서 상욕에 속하는 이 욕은 아마도 섣달그믐에 나무 하는 놈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놈이기 때문에 생긴 욕이 아닌가 싶다

섣달그믐 밤만큼 뜨끈뜨끈하고 설설 끓는 방은 없다또 그때만큼 먹을 게 풍성하던 때가 또 어디 있으랴그믐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말이 있어 쏟아지는 졸음을 우리들은 얼마나 참았던가

설날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면 새 신을 신고 때때옷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 둘 집 밖으로 나오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어른들은 성묘를 간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 임실 진매마을의 세배는 초이튿날부터 주로 행해졌다또래끼리 떼를 지어 집집마다 세배를 다녔다이렇게 시작된 세배 행렬로 동네는 온통 어수선하다

(시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윤환이 아버지는 늘 도포자락에 갓을 쓰고 다니셔서 동네 사람들이 갓쟁이 어른이라고 불렀다윤환이는 이 갓쟁이 어른의 막둥이였다우리들은 그 어른께 엄숙한 표정으로 세배를 드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하나하나 얼굴을 마주보며 한 말씀씩 해주시더니 내(시인차례가 되었다.

“자네는 인자 몇 학년이가?” 

“네인자 고등핵교를 졸업합니다.”

“그려글먼 인자 중핵교에 가야것구만.”

누군가가 킥킥 웃었다윤환이 아버지가 엄숙하고 심각한 표정으로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중학교를 가야 한다’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곁눈과 곁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참다가 참지 못해 부산하게 일어서서 밖으로 나와 뒤안으로 가서 발을 구르며 배꼽이 내밀게 실컷 웃었다.

웃어른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고 집안의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며 멀리 이웃끼리도 떡을 나누던 그 여여한 인심이런 정경들이 아스라한 추억 속에 자리한 내 고향 설날 모습이 이제는 가고 없는 그 훈기를 찾아보아도 예 대로의 고향은 그곳에 없다.

그때 함께 떼지어 동네 어른들 세배하던 내 동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아 있을까 보고 싶고 그립다.

시류(時流)가 멎지 않은 이상보다 새로운 삶의 의지가 우리 사는 세상에 그대로 꿈틀거리고 있는 이상누구나가 다 반드시 실향의 아픔은 겪게 마련이다멀어져 가버리는 것이기에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회억 속의 설날은 아련히 더욱 그립고 아름다움을 그 누가 아니라 막을 자 있으랴

이젠 세월이 나를 훌쩍 예까지 밀고 왔으니 올 설엔 갈 곳도 없고 가까이 있는 자녀 손들과 함께 오손도손 하늘의 생명의 말씀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해를 살아갈 지혜를 찾고 따끈 걸쭉한 떡국으로 그 시절 설 감흥에 흠뻑 젖어 보리라 마음 다져 본다


오성건 장로

<한국장로문인회 회장·송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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