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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눈에 목사가 아닌 오직 예수님만 남기를 바랍니다”
[[제1137호]  2012년 9월  22일]

오는 11월 은퇴 앞두고 … “방학 기다리는 학생같은 심정”

- 장석교회 이용남 목사

 

장석교회 목양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책장 듬성듬성 빈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곳에 꽂혀 있던 3천여 권의 책 대부분은 얼마 전 서울장신대학교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 이용남 목사가 기증한 것이다. 그는 이제 방의 새주인을 위해 하나둘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 목사는 “방학을 기대하는 학생”과 같은 설레임으로 은퇴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달 남짓 남았다. 이용남 목사는 오는 11월 11일 장석교회에서의 28년 시무에 마침표를 찍는다. 앞서 영등포노회 영은교회에서의 10년까지 합하면 만 38년. 먼저 은퇴를 앞둔 소감을 물었다.

“은혜라는 생각만 해요. 돌이켜보면 첫째도 은혜, 둘째도 은혜이니 따라오는 게 감사밖에 없어요. 불평도 미련도 없고 감사한 것뿐이더라고요. 나이 70이 되도록 이만큼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것 자체가 감사하지요.”

 

그래도 일말의 섭섭함이나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목사는 도리어 “은퇴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방학을 기다리는 학생의 심정 같다고나 할까. 사실 그동안은 목사라는 체면 때문에 운전할 때나 걸어갈 때에도 늘 신경이 쓰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자유가 기대돼요. 하하하.”

 

맡겨진 일을 다 끝낸 뒤 주인에게 넘기고 홀가분하게 돌아서는 믿음직한 청지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목사의 지난 평생 목회의 방향도 이런 그의 대답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성경 속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을 지나다가 한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세요.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지요. 너무 기뻐서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전해요. 사람들은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초청해 예수님은 며칠을 그곳에 머무세요. 그런데 나중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여인에게 하는 말이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라고 해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나한테 그러길 바라요. 그게 내 목회의 목표에요. 성도들의 눈에 목사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남기를 바라요.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요. 성도들이 내게 와서 ‘목사님, 내가 예수님을 믿는 건 목사님 때문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주길 바라요.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목회, 바른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영적훈련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교묘히 자신을 드러내고, 또 드러나는 것을 즐기는 문화가 이미 교회 안에도 팽배한 오늘이다. 교회를 향한 사회의 질타와 외면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장석교회, 하면 기와를 얹은 우리의 전통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진 교회 건물로 유명하다. 전국 곳곳에서는 물론 중국, 홍콩 등 외국에서도 장석교회 건물을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용남 목사의 설계와 계획으로 탄생한 건물이었다. 복도에 걸린 그림이며 성찬기와 성가대 가운까지 우리 전통문화를 교회 속에 녹이려는 이 목사의 손길이 묻어있었다. 그런 교회를 떠나는 목사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은 교회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고 자신은 청지기일 뿐이었다는 자각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리라.

 

이 목사의 회고도 남달랐다. 목회 38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많은 일들을 겪었을 터였다. 그가 꼽은 가장 큰 보람은 교회건축완공이나 감투, 교세확장 등 ‘실적’과 ‘성공’이 아닌 성도들과 함께 했던 목회, 그 자체였다.

“대화 중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감동해서 영접했던 기억이 목사로서는 가장 큰 보람이지요. 그렇게 영접해서 나중에 장로가 되신 분도 계세요. 신문사 기자셨는데 지금은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 계세요. 또 운명하기 직전 방황하던 분이 말씀을 읽어드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영접하시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고맙다며 평안히 세상을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감격스럽지요. 그런 것들이 목회자의 보람이죠.”

 

물론 힘든 일도 많았다. 하지만 당시의 어려움들은 오늘날 그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돌아보면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었어요. 의견이 맞지 않아 힘들었지만 내가 그 입장이라면 나도 그렇게 할 거 같더라고. 모두 교회를 어떻게 하면 잘되게 할까 하는 같은 마음이었는데 관점이 달랐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감사해요. 만약 그런 갈등이 없었다면 내가 우쭐하고 교만했을 텐데, 그런 일을 통해서 나를 자성하고 내 부족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죠. 그러니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지요.”

 

최고의 보람은 목회자로 산 것

장석교회 58년 역사 가운데 이용남 목사는 세 번째 담임이었다. 이 목사는 장석교회의 자랑으로 긴 역사 속에 목사가 잘 바뀌지 않았던 것을 제일로 꼽았다.

“첫 목사님이셨던 장균재 목사님은 기도를 무척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셨어요. 영적으로 기반을 잘 다져 놓으셨죠. 두 번째 조영택 목사님은 설교를 잘하셔서 당시 지역에서 돋보이는 성장을 했어요. 그런 저력이 있는 교회에 와서 저는 선배님들의 덕을 봤죠.”

 

올 가을 55회째를 맞는 장석교회 특별새벽기도회는 일 년에 두 번, 봄·가을마다 열리는데, 매일 새벽마다 1000명에서 1500명이 나와 꼬박 40일을 기도한다. 또 한국교회에 ‘새신자 목회’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장석교회였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 목회 프로그램 가운데 새신자에 관해서는 원조가 장석교회”라고 자랑했다. 기와 건물뿐 아니라 교회 내부 복도에 걸려 있는 풍속화가 혜촌 김학수 선생의 ‘예수님의 생애’ 12폭 병풍은 문화재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장석교회의 보물이다.

 

매 연말 지역내 600~700세대 어려운 가정에 김장김치를 직접 해서 전달하고, 일년에 두 차례 자장면데이를 정해 전도지와 함께 누구에게나 자장면을 무료로 대접하며, 매달 독거노인이나 저소득가정 등 100세대에 쌀과 반찬을 나누는 등 장석교회가 펼치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은 다양했다. 교인들 중 치과·내과·외과·한방과 의사들에 의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봉사도 매달 진행된다.

 

이 목사는 이렇게 자랑스러운 장석교회가 앞으로 후임 목사(함택 목사)를 통해 새롭게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내가 섬기는 동안에는 내게 주신 지혜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다음 분에게는 그분께 주시는 지혜로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소 계획적인 성품에 낚시, 서예, 음악, 사진 등 즐기는 것도 많은 이 목사가 은퇴 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이 목사는 그 궁금증을 은퇴하는 날까지 풀어주지 못하겠다고 완곡히 못 박았다. 혹여 그의 은퇴 이후의 계획이 교인들이나 주변에 부담을 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물론 계획이 있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누가 물어오면 무조건 놀고 싶다고만 대답해요. 만약 제가 선교를 나가겠다고 한다면 오가는 데 필요한 경비나 활동비에 대해 부담을 가지실까봐요.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선친(이관영 목사)이 목사였지만 자기 확신과 체험이 없으면 결코 그 길을 걸을 수 없다고 여겨 중학교 영어교사로 살던 그를 하나님께선 확실한 부르심으로 오늘까지 인도하셨다. 하숙연 사모와의 슬하에 둔 3남매를 향해 선친이 그랬던 것처럼 이 목사도 목회자의 삶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은혜의 체험이 있기 전에는 섣불리 들어서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목회자로 살았다는 것이 최고의 감동이고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나 스스로 몇 번을 물어봤어요. 그런데 결론은 늘 목회자였어요. 또 다시 인생을 산다 해도,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겠지만, 목사로 살고 싶어요.”

/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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