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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교회 김진홍 목사
[[제1481호]  2015년 11월  14일]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

하나님의 때를 깨닫게 한 금천교회 30

 

충북 청주시 금천동. 청주시의 작은 주택가 좁은 골목 사잇길에 금천교회가 있다. 교회의 규모가 커져 새 성전을 건축해야 할 상황이 되면 으레 인구가 밀집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새롭게 터를 잡기 마련이지만 금천교회는 조그만 개척교회 시절부터 대형교회로 성장한 지금까지 한결같이 청주시 금천동에 자리하며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198577, 교인 한명 없이 금천교회를 시작한 김진홍 목사는 그의 인생 절반을 쏟아 부은 그곳을 고통과 시련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또한 경험한 곳이라 말한다.

 

분쟁 없는 교회, 열린 목회의 결실

올해로 교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금천교회는 한 번도 당회원들끼리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여본 적이 없다. 정기당회가 없는 금천교회는 안건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당회를 연다. 2부 예배 후 3부 예배가 시작되기 전 잠깐 모여 10여 분간의 대화로 당회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목회자와 당회원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교회의 사정이 공개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현재 세례교인은 2천여 명, 교회학교를 합하면 3천여 명이 조금 넘는 금천교회는 충북노회 내 미자립교회 후원을 비롯해 노회의 각종 연합사업에 장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김진홍 목사는 청주시 상당경찰서 경목회장, 경찰중앙협의회 위원,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지역사회 봉사와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 산하 8개 남선교회와 14개 여전도회 역시 김진홍 목사의 일체 개입 없이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친목의 목적보다는 선교회라는 이름답게 전도에 포인트를 두고 담당 부목사가 멘토가 되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남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김진홍 목사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1살 때의 일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 친구를 따라 교회에 처음 나가본 김 목사는 제대하기 전에 휴가를 나와 우연히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큰 은혜를 받아 예수의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제대하면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많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예수님을 위해 믿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당시 믿음으로 살겠다는 김진홍 목사의 결심은 주일이면 아버지의 농사일은 못 거들지언정 교회에는 꼭 나가고, 밥을 못 먹는 한이 있어도 새벽기도와 예배는 반드시 지킬 정도였으니 동네사람들은 그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그렇게 예수에 빠져 산 지 1년이 채 안됐을 때 주위에선 신학교에 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담임 전도사님의 손에 이끌려 대전신학교에 갔는데 세례 받은 지 1년이 안됐기 때문에 입학을 거절당하자, 동행했던 전도사님이 사정을 해서 가입학 상태로 다니다 서울장신대로 편입하게 됐죠. 돌이켜보면 소명을 받아 신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떠밀려서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구나 깨닫게 됐습니다.”

그 당시 형편이 어려웠던 김진홍 목사는 너무 배가 고파 큰 맘먹고 사먹은 호떡 하나에 심하게 체해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특히 학교 주변 울타리에 핀 라일락 향이 너무 달콤해 그 향기에 취해 배가 더 고팠다고. 지금도 봄만 되면 신학교 올라가는 길에 퍼지던 라일락 향기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

대학교 4학년 때인 1980년 교육전도사로 일하던 김진홍 목사는 청천교회에서 시무할 기회를 얻었다.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항상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회의 기회가 온다면 부족한 능력 대신 더 많은 열정으로 목회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부임하면서 김진홍 목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심방이었다. 신학교 수업을 마치고 금요일 저녁에 청천교회로 내려오면 오토바이를 타고 한 집도 빼놓지 않고 심방을 다니면서 주일에 교회 꼭 나오십시오라고 전했다. “30명 모이는 작은 교회가 3년 만에 15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죠. 설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교회가 부흥되니까 신기하기도 하면서,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됐습니다.”

청천교회에서 3년의 목회를 마치고 이어 회인교회에서 2년 반 동안 시무한 김진홍 목사는 1984년에 목사안수를 받으며 목회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를 돕는 사람이 있으면 개척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서울 세검정교회 최무송 장로님이 15백만원의 후원금과 함께 매달 25만원씩을 지원해 주시기로 연락이 왔습니다.”

김진홍 목사는 후원금으로 금천동 97-7번지 건물 360평을 임대해 일부는 사택으로, 일부는 교회로 사용하며 금천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금천교회의 부흥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30년간 서서히,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서서히 이루어졌습니다.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 건물을 한층 한층 증축하게 되고 교회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생겨 새성전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셨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친교실에 전시된 사진들. 김진홍 목사의 발자취와 금천교회의 역사가 담겨 있다.


삶이 있는 설교가 필요한 때

김진홍 목사는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직성을 꼽았다. “정직하지 않으면 설교가 통하지 않아요. 목회자도 실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용서를 구해야지요. 권위란 목에 힘준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만 복음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야겠지요.”

그는 또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설교가 거의 은혜 위주, 힐링 위주로 치우쳐 있음을 우려했다.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일제의 압박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힘들고 지쳐 있는 상황에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위로하는 설교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부흥되고 7,80년대로 이어져 부흥을 못시키는 목사는 무능한 목사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죠.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목적에 결국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입맛에 맞는 설교 위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교인들은 가득하지만 성경적 삶이 없는 교인들, 예수님의 삶이 없는 교인들만 양산하게 되고, 힘이 없는 교회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힘이라는 것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지 목소리가 크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지금이라도 삶이 있는 설교,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삶을 바르게 살도록 인도하는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 교인들에게 성도로서의 삶을 만들어주는 목회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이것이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이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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