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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한국교회, 이 시대 섬기는 일꾼 되고 싶습니다” -박찬환 장로(광림교회)
[[제1546호]  2017년 4월  15일]

교회학교 아동부 20여 년 봉사 경험, 교계 연합활동 두루 섬길 밑거름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 3년째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환 장로는 광주노회장, 아동부호남협의회장, 아 동부전국연합회장, 총회 임원 등 교계에서 다양한 일을 두루 맡아왔는데, 그 밑바탕에는 아동부 교사로 오랫동안 봉사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아동부를 섬기는 것은 그야말로 이름도 빛도 없는 일이었지만, 한국교회 전체가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오늘과 같은 때에 아동부는 교회가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부 서라고 박 장로는 강조했다.

 - 박찬환 장로(광림교회)

박 장로가 처음 교회에 발을 들인 것은 5살 때였다. 동네 친한 친구를 따라 교회엘 갔는데, 그 친구의 부모가 독실한 기독인이었다. 교회는 무척 재미있었다. 친구들이 많았고, 주일학교 선생님은 친절했다. 교회에서 하는 활동들은 성경공부부터 모두 다 재미있었고 맛있는 간식을 먹는 즐거움도 교회에 가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노트도 받고 연필도 받고, 또 목사님과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도 더 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 마다않고 눈이 많이 내려 무릎까지 발이 푹푹 꺼지는 그 길을 걸어 교회엘 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열심이었지. 오히려 지금 신앙이 많이 부족한 거 같네요. 허허.”

박 장로는 가족 중 처음으로 기독인이 됐다. 종갓집 장손이었던 그가 교회엘 나가는 걸 가족들은 굳이 막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께선 성탄절 행사할 때에는 공연하는 아들을 보러 교회에 오시기도 하셨다. 더욱 신기한 건 아버님을 이끄셨던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다. “저희 집이 종갓집이라 제사를 정말 많이 지냈어요. 시골 작은방 하나에 신주를 빼곡히 모셔놓았는데, 그것들이 아마 몇 십 년, 몇 백 년 된 것이지 모르겠어요. 신주가 지금으로 따지면 집에서 보물처럼 보관하던 것인데 반짝반짝하고 예쁘던 것들을 다 놓을 자리가 없어 방에 기역 자로 놓았던 기억이 나요. 제사 때마다 아버님께서 그것들을 정성스럽게 가지고 나오셔서 제사를 지내셨어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밤 12시 땡 하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는데 방문, 대문,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아서 무척 추웠던 기억도 나네요. 그때는 제삿날에나 겨우 쌀밥 구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린 저도 잠을 안자고 기다렸지요. 쌀 밥 먹고 싶어서요. 하하. 또 명절 때마다 어른들이 곱 게 차려 입으시고 친척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제사를 지냈어요. 우리집이 종갓집이니까. 아버님 따라 줄줄이 열 몇 분 할아버님들이 친척집을 다니며 제사 지내셨던 기억이 나요. 그 뒤를 어린 내가 따랐지. 그렇게 정성껏 조상님들의 제사를 모시던 아버님이셨는데, 언젠가 아버님 친구 분이 목사님이 되어서 제가 다니던 천해교회로 부임하신 거예요.”

그때 박 장로는 이미 장성하여 광주에 자리를 잡은 때였다. 아마도 친구 목사님의 기도와 끈질긴 전 도 끝에 아버님께서도 예수님을 영접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는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집 마당 에 온갖 제기와 제사 용품들을 다 끄집어내어 놓고 불태웠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함께 찬송을 불렀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보통 결단이 아니에요. 종갓집 장손인데. 친척 분들이 아버님을 손가락질하며 미쳤다고 그랬어요. 그럼에도 아버님께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또 친구 목사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을 것이고요. 아버님을 교회로 이끄신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였던 거 같아요. 나중에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반질반질 옻칠도 잘 돼있던 제기 들이어서인지 그것들을 태우니 불과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대요. 당시 예수님을 모르셨던 어머니께서 는 그 불길이 마치 귀신이 노하는 모습 같았다고 하 시더라고요.

광림교회와 아동부의 인연

광림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1981, 광주에 정 착하면서부터다. 고향에서 섬기던 모교회인 천해교회는 합동교단이어서 처음에는 같은 교단 교회를 찾아다녔지만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마침 사업장과 가까운 광림교회에서 어느 날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주일에도 장사를 하던 때였어요. 그래 도 주일예배는 꼭 드려야 하니까 오전 11시가 다 되 어 얼른 가게 문을 닫고는 제일 가까운 광림교회엘 뛰어갔지요. 솔직히 처음에는 예배분위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어요. 합동교단이던 모교회에선 예배 때 박수도 치지 않는데, 광림교회에선 새 교인이 왔다며 나를 향해 환영의 박수를 쳐주더라고. 그것이 그 때는 참 어색했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날 들었던 목사님 말씀이 일주일 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라고. 그래서 다음 주일에 또 갔지요. 역시 목사님 말씀이 참 은혜로웠어요. 그래서 광림교회를 나가게 된 겁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광림교회 교인인 것이 복 중의 복이더라고요. 광림교회를 가기 전까지 이곳저곳 교회를 찾아다니던 것도 힘들었고, 우리 교회가 광림교회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교인으로서 참 복인 거 같아요. 교회생활이 참 재미있었거든요.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이런 행복을 경험한 사람은 드물 거예요.”

박 장로는 광림교회에 새가족으로 등록하자마자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열심히 봉사했다. 특히 아동부 교사를 맡기 시작해 1987년부터는 부장으로 20년 가까이 섬겼다. 오랜 교사 생활은 다양한 추억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제가 잊지 못하는 일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한 번 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봄소풍을 나갔어요. 그때는 교회에 차도 없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다녀왔지요. 제가 맡은 아이들이 40명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려 보니까 한 명이 없는 거예요. 시내버스를 못 가게 막아놓고 다시 버스에 올라 찾아봤는데도 아이가 없어요. 걱정이 되고 덜컥 겁이 났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선생님이 데리고 갔더라고. 그때 정말 얼마 나 놀랐던지. 키가 큰 주일학교 교사 하나가 북을 치 면서 동네마다 다니면 그 뒤로 아이들이 줄줄 따랐어요. 별 거 아닌 간식 하나 나눠줘도 아이들이 참 좋아했지요.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아이들에게 밥을 줄 때, 그때는 꼭 요절을 암송하게 했어요. 암송하는 아이에게는 밥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외워오게 했지요. 어떤 아이는 암송을 못해서 쩔쩔 매면서 밥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다시 맨 뒷줄로 넘어가 종알종알 요절을 외우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요즘 같으면 아마 상상하기 힘든 일일 거예요. 아이들 은 물론 부모님들도 싫어할지 모르겠어요. 아마.”

박 장로가 부장을 맡아 섬기던 때 광림교회 아동 부는 250명에서 30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약 50명 정도 아이들이 예배드린다.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수가 저조한 오늘의 사정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다.

처음 아동부에서 봉사하기 시작할 때는 사실 아동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그야 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섬겼지요. 그런데 대를 잊기 위해서는 아동부가 없으면 안 돼요. 지금 아동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공감하는 시대가 됐지요. 덕분에 제가 노회나, 총회, 연합회에서 일할 때 그 노고를 인정해주시더라고요.”

최선을 다해 즐겁게 일한다는 좌우명

박 장로는 사업은 물론, 교회와 노회, 총회, 연합 회 활동 등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한다는 나름의 모 토를 갖고 있단다. 안 한다면 몰라도 하겠다고 했으면 최선을 다하자는 것. 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도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데에 큰 은사인 것 같다고 한다. “한 사업을 37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것도 참 감사한 일이지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 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정 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제 삶의 좌우명이에요. 한 국교회도, 나라도 지금 너무 어렵고 힘든 상황이잖습니까.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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