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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소련의 끊임없는 방해, 기도로 이뤄진 대한민국 승인”
[[제1551호]  2017년 6월  3일]

대한민국 승인 외교

건국 이후 대한민국을 승인한 나라는 없었다. 미국도 유엔총회의 결과를 보아가면서 승인하고자 했다. 최초로 한국에 부임한 존 무초도 미국 대사가 아닌 미국 대표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1948921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제2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승인받는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1948921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제2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승인받는 일이었다.

전망은 불투명했다.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권 블록은 당연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연방 블록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구한말에서 대한민국 건국 초기까지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영국이라는 나라에 다소 유감을 갖게 된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물론, 6.25전쟁에서도 한국을 포기하자고 미국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미국이 우리 임시 정부의 승인을 끝까지 거절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는 영국의 입장을 의식해서였다. 건국 이후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영국을 성토한 대목도 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영국을 위시한 영연방국가들이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피를 흘린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세상사에는 이렇게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참석할 한국 대표단의 단장에 장면(張勉)을 임명했다. 당시에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던 조병옥(趙炳玉)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무명(無名)인 장면이 발탁된 것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호탕한 조병옥이 실수할 것을 이 대통령이 염려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동시에 장면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가톨릭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어쨌든 장면의 발탁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외에도 김활란, 장기영, 모윤숙, 정일형이 파견되었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발한 외교 사절의 기록을 읽어보면, 눈물과 웃음이 교차한다. 훌륭한 애국자들이 참 애쓰셨구나, 하는 생각과 그때는 정말 못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동시에 든다. 이 나라 최초의 여권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일단 여권 자체도 한국에서 만들지 못하고 일본에서 인쇄해야 했다. 194899일 정일형 박사가 김포공항을 떠나는 노스웨스트 항공기 트랩에 올랐을 때, 그의 손에는 가로 세로 50센티미터의 초대형 여권이 들려 있었다. 이 정도 사이즈면 거의 널빤지 수준이다. 흰 장지에 대한민국 여행권(大韓民國 旅行券)’이라는 글씨를 붓으로 썼으니, 서예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출입국 관리는 정일형의 여권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여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출입국 사무를 오래 보아왔지만 이런 여권은 처음 본다. 이들 여권을 나에게 팔라.” 우리 대표단은 이 여권을 팔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대답했다.

널빤지 사이즈의 서예 작품 같은 여권을 들고 우리 대표단은 파리에 도착했다. 수십 개국 대표들을 찾아다니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설명하고 승인을 호소했다. 하지만 공산권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소련 대표 비신스키는 독설가로 유명했다. 그는 한 번 발언을 하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비신스키가 지휘하는 공산권의 전략은 필리버스터, 끊임없는 발언으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공산권 나라들이 서로 짜고 순서를 정했다. 한 대표가 발언을 끝내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른 대표가 발언한다.

계속된 발언이 내용은 이승만과 대한민국에 대한 비난이었다. 한번은 연설하던 비신스키가 조병옥을 보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기, 이승만의 개가 앉아있다.” 조병옥도 만만치 않았다. 즉시 비신스키를 가리키며 받아쳤다. “저기, 스탈린의 개가 짖고 있다.” 국제회의가 개판이 되어 버린 셈이다. 공산권의 지연 전술은 성공적이었다. 몇 시간이고 반복되는 똑같은 소리에 지친 다른 나라 대표들은 회의 도중에 밖으로 나가버렸다. 차도 마시고 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막상 표결에 들어가려고 하면 참가 인원이 정족수에 미달이었다. 우리 대표들은 출입문을 지키며 제발 나가지 말고 표결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몇 시간씩 똑같은 소리를 듣느라 지친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월에 시작된 총회는 어느덧 12월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의 승인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회의 마지막 날을 남겨놓고 있었다. 모두들 기진맥진해 있는데, 단장인 장면 박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고들 많았소. 내일 새벽 3시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러 성당에 가려는데, 누구 동반할 사람 없겠소하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지쳐버린 일행 중에서는 누구 한 사람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장면은 그럼 내가 3시에 전화를 걸테니 같이 갈 사람은 따라 나오도록 하시오하고 말문을 닫았다.

새벽 3시에 단잠을 깨운 장 박사의 전화를 받고 동행 길에 나선 이는 시인으로도 유명한 모윤숙(毛允淑)이었다. 때마침 비가 온 뒤끝이라 새벽 거리는 몹시도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이렇게 동반해 주시니 참 고맙소. 새벽에 기도드리는 습관을 가지게 되니 마음도 시원해지고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오.”

장면은 세인트 조셉 성당으로 가는 길에 모윤숙에게 그렇게 말했다.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그는 성당에 들어가서 경건히 무릎을 꿇고 기도에 몰입했다. 30분이 지나도 장 박사는 기도를 계속했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 모 여사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면의 기도는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모여사가 아픈 다리를 추스르며 겨우 일어섰는데, 장면이 또다시 말했다. “이 근처의 성당에 가서 더 기도합시다.” 모윤숙은 전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장면이 말했다. “그래, 큰 일을 눈앞에 두고 그것도 못 참아 어떻게 하오.” 나라를 위한 큰 일을 앞두고 다리 아프다고 사정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모윤숙은 또 다른 성당으로 들어갔다. 또 한 번의 기도를 마치고 회의에 참석했다.

1212일 오후 330분이 넘어서 계속된 총회에서 비신스키가 기세 좋게 등단했다. 우리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유엔 한국 위원회 활동을 서울에서 밤마다 술에 젖고 노래에 흥청거리는 생활이라고 표현하면서 수십 개월간 유엔 예산을 20~30만 달러나 낭비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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