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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유일한 합법정부 승인이 결국 이 나라를 살렸다”
[[제1552호]  2017년 6월  10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눈을 번득거리고 팔을 들어 휘두르려는 자세를 보이던 비신스키가 별안간 목이 메더니 15분 만에 내려가 버렸다. 몇 시간씩 끄떡없이 방해 연설을 해 온 그가 갑자기 퇴장한 것이다. 비신스키의 예상치 못한 퇴장으로 총회는 즉각 투표에 들어갔다. 마침내 한국은 찬성 48, 반대 6, 기권 1표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았다.

3개월 내내 효과적으로 회의를 막았던 비신스키는 왜 갑자기 마지막 날 목을 움켜쥐고 퇴장했을까.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갑작스레 치통과 성대결절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도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응답임을 안다. 유엔의 승인이 훗날 이 나라를 살렸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엔의 승인을 받은 합법 정부를 공격한 북괴에 대한 반격 역시 유엔이 결의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유엔에 승인된 것에는 민족사적 의의도 있다. 대륙의 귀퉁이에 위치해서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는 사대 외교를 지속했던 우리나라가 당당한 독립국으로 세계와 교류하게 된 것이다. 유엔 승인 이후로 수많은 나라들이 한국에 외교관을 보냈고 우리 역시 외교관들을 파견했다. 이 모든 일이 기도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인간 해방을 위한

토지개혁

이승만의 토지개혁을 해설하면서 이영훈은 미당 서정주의 시()를 인용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7년에 쓰여진 시의 제목은 자화상이었다. 서정주의 자전적인 고백인 것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종이었다. 종의 아들에게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했다. 종의 피 몇 방울은 언제나 섞여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을 수캐에 비유했다.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헐떡이며 살아야 했다. 이영훈은 자신의 천한 신분을 한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노래하는 고결한 영혼이라고 논평한다. 가슴에 저리는 시와 가슴을 울리는 논평이다.

시는 감상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는 때로 시에 분석의 메스를 가한다. 한편의 시에 담긴 시대와 인간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서정주는 자신을 수캐라고 비유했는데, 그것은 비유인 동시에 사실이었다.

필자는 박물관에서 조선 시대의 노비 문서를 본 적이 있다. 매매(賣買)라는 단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종이 한 장에 사람이 사고 팔렸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주인의 서명이 멋들어진 붓글씨로 쓰여진 것을 보면서, 아름다움이 꼭 아름다움만은 아니라는 느낌도 받았다. 조선 시대의 노비 문서에는 수개(壽介)’라는 점잖게 생긴 이름이 자주 발견된다. 양반들이 사용한 한문인데, 뜻은 우리말 발음 그대로 수캐이다. 남자 종을 수캐라고 불렀으나, 글자 그대로 사람을 개로 취급했다. 1920년 전라도 구례군 토지면의 유씨 양반가의 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집안의 종들이 찾아와서 사랑에 앉은 주인을 향해 세배를 드렸다. 그날 주인은 비록 세상이 변하였지만 주인과 종간 사이의 상하 의리는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일기에 적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면 주인집을 찾아 마당에서 수캐처럼 엎드려 세배를 드려야 했던 것이 종들의 처지였다.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혓바닥을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살아야 했던 인생이었다. 수캐를 사람으로 만든 위대한 혁명, 그것이 우리 역사에 찬란한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

조선 시대에 토지는 인지명맥(人之命脈)이라고 불렀다. ‘사람의 목숨줄이라는 뜻이다. 대다수 백성들이 농민인 나라에서 토지에는 그야말로 목숨이 달려있었다. 조선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에는 일반 백성의 법적인 지위가 전부(佃夫)’라고 되어 있다. 남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농부라는 뜻이니, 소작농을 가리킨다. 백성들은 법적으로도 소작인으로 규정되었고 실제로도 소작인이었다. 백성이 소작농이라면 주인은 임금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은 임금의 은덕으로 임금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들이었다. 이처럼 토지와 신분, 정치 제도는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임금이 땅의 주인이고 백성은 소작농이니 임금님은 곡 나랏님이었다. 전 국민이 임금의 땅을 부쳐서 먹고사는 처지에 인권(人權)이니 민주(民主)니 하는 개념은 자리잡을 수 없었다.

일제시대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36년 우리나라 전체 농가의 75%가 소작농이었다. 소작료는 한해 수확의 절반이었다. 그때는 경운기나 트랙터나 비료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주로 인간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짓던 무렵이었다. 한국의 기후가 일 년에 세 번, 네 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 해 동안 고된 노동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입의 절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했다. 그러고도 혹시 지주가 마음이 변해서 소작을 끊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해야만 했다. 농민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농노(農奴)에 가까웠다.

토지개혁은 이승만이 벼르고 별렸던 정책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자신이 실시할 개혁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1948320일 정치 고문 올리버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른 농지개혁을 역설했다.

이승만에게 토지의 문제는 곧 인간의 문제였고 민주주의의 문제였다. 땅이 없어 노예처럼 사는 백성들을 땅을 가진 국민으로 해방시키는 문제였다. 민주주의를 경제와 연결지어 생각했다는 것에서 이승만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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