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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1호]  2017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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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교회 남 준 효 장로
[[제1557호]  2017년 7월  15일]

나는 하나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

보잘것없는 나를 살리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할밖에


- 신촌교회 남 준 효 장로와 정도순 권사 부부



12년 전 불의의 의료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서 약 백일 만에 깨어난 신촌교회 남준효 장로. 정신을 잃었던 동안 남 장로는 꿈속에서 자신에게 남은 할 일이 있다는 음성을 들었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는 남 장로는 지금도 자신에게 남아 있는 할 일이 무엇일까 찾고 있다.

 

위암이었다. 원래 위가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검사 결 과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초기였고 병원 쪽에 서도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수술 후 남준효 장로 는 100여 일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의료사고였다.

내가 평소에도 위장이 좋질 않아, 병원에서 검사하니 까 암이라며 로봇수술을 권하더라고. 그래서 입원하고 수술을 하게 된 건데, 수술한 당일 저녁부터 너무 아파서 의사를 찾았지만, 담당의사는 해외여행을 갔는지 사흘 동안 볼 수가 없었어.”

결국 수술한 이튿날 남 장로는 복수가 터지고 정신을 잃었다. 꿈을 꾸었다. 저 건너편에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빽빽하고 예쁜 꽃들이 만발한 위를 온갖 새와 나비들이 어울려 춤을 추며 날아다니는,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동산. “어두컴컴한 굴 같은 곳에 내가 우리교회 장로 네 명과 같이 있었어. 그리고 저 멀리 아름다운 동산이 보이는 거 야. , 하나님의 세계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멀리 보이 는 데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이 절로 나왔지. 그때 하 나님의 음성이 들렸어. 아무개야 하고 부르시면 나와 같이 있던 장로들이 하나둘 저 아름다운 동산으로 가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안 부르셔. 내가 주님, 내 이름도 좀 불러주세요했더니, ‘안 된다. 너는 더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야. 내가 울면서 주님을 불렀지. 내 이름도 불러달라고. 나를 좀 데려가 달라고.” 꿈이었다. 남준효 장로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이런 꿈을 꾸었다고 회상했다. 그 꿈을 꾸던 당시 실제로 정신을 잃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남 장로는 베개를 적시도록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곁에 있던 부인 정도순 권사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나중에 전한 말이다.

또 꿈을 꾸었다.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 에서도 아름다운 동산을 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다. 남 장로는 꿈속에서 무엇인가 찾고 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아서 내려왔다. 그리고 깨어났다. 석 달하고도 열흘만이었다.

정신은 말짱한 것 같은데 눈이 잘 안 떠지고 손가락도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더라고.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기도 했지. ‘나를 왜 살리신 겁니까. 나를 제발 데려가 주세요.’ 그러자 눈앞에 지난 날 잘못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나하나 활동사진처럼 보이는 거야. 아내와 싸웠던 일, 사람들에게 화냈던 일 등등. ‘주님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울면서 회개하는 기도를 했지.”

금요일 수술을 마치고 나흘 만에 나타난 의사의 무책임함에 주변에서는 소송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지만, 깨어난 남 장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다. 12년 이 지난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사와 치료를 받고 있다. 남 장로는 사경을 헤매던 그때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우리 정 권사는 고향이 신의주야. 전쟁 전에 가족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나를 만났으니 우리는 남남북녀인 셈이지. 처녀 때 상당히 고왔어. 그러니 내가 좋아했겠지. 내가 깨어나니 옆에 있던 우리 정 권사가 당신 돌아왔어 요라고 하더라고. 병간호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고, 내 대소변도 더러운 줄 모르고 다 처리하고 씻어주고. 정말 지극정성으로 나를 돌보아 주었어. 마음속으로 내가 아내 덕분에 살았구나라고 생각했지. 또 당시 내가 한국장로신문사 사장 재임 중이었는데 때때로 김건철 장로님(동숭교회 원로)과 신문사 식구들이 나를 찾아와 기도해주었고, 그 사랑 덕분에 내가 병원에 서 나올 수 있었지.”

신앙양심에 따라 국기 배례 거부한 어린 시절 남준효 장로는 경북 예천에서 삼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남씨 집성촌이었던 고향마을을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면서 떠나왔다. “아버지께서 사주팔자를 보셨는데 당신한테 손이 없다 고 했다고 해. 그 옛날 자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낙심해서, 어느 날 교회 앞을 지나가다 찬송하고 기도하는 소리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침 예배 중이라 목사님 설교 말씀에 은혜를 받은 거야. 그 뒤로부터 교회엘 열심히 다니시면서 산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하고 내려오시는데 새벽에 어머니가 빨갛게 여물어 있는 대추 세 개 가 달려있는 나무를 꿈에서 보셨대. 그리고 우리 삼형제가 나온 거예요.”

아들들을 얻었지만 친척들로부터는 배척을 받았다. 가족이 고향을 떠나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파주. 대원리교 회(당시 죽원리교회)에서 시작된 교회생활은 무척 재미있었다. 어려서부터 찬송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남 장로는 초등학교 시절 성가대 지휘를 하기도 했다고.

시골교회다 보니 성가대는 있어도 지휘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야. 피아노 반주를 하시던 장로님께서 나에게 지휘 한 번 해볼래?’ 하시길래 했지. 내가 음악에 신들린 사람처럼 기막히게 잘했다고. 성가대원이던 권사님, 집사님 들이 준효 참 잘한다칭찬을 많이 해주셨지.” 타향살이는 가난하고 고달팠다. 그 와중에 남 장로가 9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홀어머니와 삼형제의 살림은 더욱 궁색해져갔다. 교인들의 집을 오가며 밥을 얻어먹기 일쑤였고, 공부를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어린 남 장로는 마침 교회 장로님이 교장으로 있는 초등학교엘 찾아가 입학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이가 많아 4학년부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모여 매일 국기를 향해 허리를 굽혀 경례했다. 남 장로의 어린 생각에도 그 모양은 마치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연상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남 장로는 이를 우상숭배라고 여기고 국기를 향해 절하지 않았다. 몇몇 학생들도 함께 거부하기 시작했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다. 남 장로는 경찰 앞에서 말했다. “나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런데 한낱 국기에 어떻게 절을 한단 말입니까.” 결국 퇴학당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못하게 된 남 장로는 영락교회 고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대광중학교에 입학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걸어서 신설동까지 통학을 했다. 그렇게 공부해 졸업한 뒤 공직에 들어가 강남 도시계획에 참여했으며 나중엔 사업을 했다. 음악학원을 다니면서 정도순 권사를 만나 결혼하고 신촌에 신접살림을 차리면서 신촌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이 온통 호박밭이었던 신촌교회에서 건축 위원회 서기 등을 맡아 지금의 신촌교회 건물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 집사로, 장로로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다 보니 교회연합사업에도 관여하게 되면서 믿음의 형님김건철 장로와도 인연을 맞게 됐다.

남 장로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에 대 한 감사를 연신 고백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감사한 기도를 해요. 몹쓸 것, 보잘것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길러주시고 지금까지 인 도하시며 은혜를 주셨어. 평생 먹고 입고 쓰고 남을 양식을 넘치도록 부어주셨으니 감사할 수밖에. 그래서 교회에 서나 교회연합기관에서도 더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려 애를 쓴다고 쓰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늙고 병들어 있는 나에게도 축복을 주고 계시는 거야. 오히려 점점 더 많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앞으로 남은 생도 지금까지처럼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내야지.”

/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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