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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1호]  2017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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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우매한 백성’을 유능하고 발전 지향적인 ‘새로운 국민’으로
[[제1561호]  2017년 8월  12일]


조선왕조실록48권의 책으로 펴낸 원로 극작가 신봉승은 조선인들의 경제적인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다.”

초근목피라는 말에 가슴이 저려온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북한 땅에서는 지금도 나무껍질을 먹고 풀뿌리를 캐다가 지쳐 쓰러진 사람들이 허다하다. 필자는 실제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 벌판에 팔려 다녔던 탈북자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처녀 몸으로 팔려 다닌 걸 알면서 왜 탈출했습니까.” 어리석은 질문인줄 알면서, 어느 정도 답을 예상하면서 질문했지만,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나무껍질을 5, 10년 먹으면 사람이 미쳐서 눈에 보이는 게 없어요. 제발 나무껍질 먹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강을 건넜어요.”

우리는 본래 초근목피였고 북한에서는 여전히 초근목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비만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잘 먹는 나라가 되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 역사학계의 원로 유영익은 그 공로를 건국의 주역들에게 돌린다. 대한민국 초창기에 국정 주역들이 추진하여 성사시킨 제도 개혁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가 열거하는 제도 개혁들은 농지 개혁, 교육 개혁, 강군 육성, 여성 해방, 기독교 교육 등이다. 이런 개혁들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동시에 그것이 1945년 이후 탄생한 여러 신생국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만이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발전의 비결이라는 유영익의 연설문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저는 역사학자로서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근본 요인은 제1공화국기(1948~1960), 그중에서도 특히 1948년부터 1953년까지의 건국 초창기에 이승만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일군의 입법의원 및 행정관료들-‘대한민국 초창기 국정주역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력-이 신생 공화국을, 미국을 벤치마킹한 모범적인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자율적으로 추진한 일련의 획기적 제도 개혁을 통해 이 나라의 우매한 백성을 유능하고 발전 지향적인 새로운 국민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매한 백성안에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숨어 있었다. 정치적으로 압박받고 경제적으로 굶주리며 교육적으로 까막눈이었던 동안, 그 폭발성과 잠재력은 숨도 못 쉰 채 눌려 있었다. 하지만 누르던 힘을 치워버리고 정치적인 자유와 경제적인 기회를 주고 교육을 제공하자, 수백 년 눌려 왔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솟구쳤다. 그 솟구치는 활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것은 유영익의 연설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과 같이, 이승만과 건국 주역들의 위대한 공헌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한성 감옥에서부터 이승만의 기슴에 심기웠던 불꽃이 대한민국으로 옮겨 붙어 맹렬한 불길로 타오른 결과였다.

그는 스물 아홉 살에 지은 독립정신에서 교육을 통해 백성이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서른 살에 쓴 제국신문논설에서 이는 토지 인물이 남만 못한 것이 아니요, 다만 기풍을 열어주지 못한 연고라, 책망이 위에 있는 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나이다라고 외쳤다. 우리의 땅, 우리나라 사람이 못난 것이 아니고 백성들의 기풍을 열어주지 않고 억누르고 죄이고 괴롭히고 닫았기 때문에 낙후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위정자들에게 있다는 것이 이승만의 생각이었다.

유영익이 열거한 대한민국의 제도 개혁들은 모두 백성들의 기풍을 열어 주고 활력을 되찾아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나라 국민들을 향한 이승만의 기대와 애정과 예측은 적중했다. 활력을 되찾고 기운을 회복한 한국인들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향하여 질주했던 것이다.

한반도의 우매한 백성이 새로운 국면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내다본 외국 여인이 있었다.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이다. 그녀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영국의 왕립 지리학회 회원이 된 저명한 지리학자였다. 청일 전쟁 이후 한반도와 그 주변을 두루 여행했다.

그녀가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의 한국어 번역본에는 백년 전 한국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부제가 결코 과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1894년부터 네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고 11개월에 걸쳐서 현지답사를 했다.

그녀가 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대영제국의 전성기에 여성들의 우상으로 불릴 만큼 지명도가 높았던 세계적인 지리학자가 최상층 왕실에서부터 최하층 빈민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속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쓴 책은 중요한 정보들을 수 없이 담고 있다.

그녀가 방문했던 조선은 멸망을 향해서 기울어가던 나라였다. 이사벨라 비숍은 말한다. “나는 서울을 밤낮으로 조사하면서 그 왕궁과 빈민가를, 빛바래가는 왕조의 광휘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궁핍한 삶을 보았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기록을 남겼던 그녀의 눈에도 조선인들의 가난은 형용할 수 없이 궁핍한 삶이었다. 그녀가 만난 한반도의 조선인들은 무능력했고 게을렀고 도무지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시베리아의 한국인 정착촌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시베리아 프리모르스크의 한국인 마을들에 대한 여행기는 성공담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멋진 지역들은 한국인들에 의해서 개척된 것이다. 그에 비해 비참하고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중국인들의 집은 설명의 여지가 없다. 농장 경영자로서건 농장의 소유자로서건 한국인들은 자신의 토지를 최고의 것으로 만든다. 여행자들이 내가 이곳의 한국 가정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온화한 친절과 더 깨끗하고 더 안락한 편의 시설을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비숍의 증언은 극단을 오간다. 조선의 임금이 있는 서울에서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가난을 보았다. 반대로 조선의 빈민들이 정착한 시베리아에서는 더 이상 안락하기가 불가능한 편의 시설이 있었다. 그것은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다. 사람의 문제는 곧 정치와 제도의 문제였다고 비숍은 말한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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