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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北이 철저히 계획하고 일방적으로 준비했던 6.25전쟁
[[제1569호]  2017년 11월  4일]


이승만 대통령은 장면 대사의 건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덜레스에게 한국의 위험한 안보 상황을 보여주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내려고 노력했다. 덜레스가 방문한 바로 그날의 <동아일보> 사설에는 그때의 분위기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대한민국의 산파 덜레스 씨여! 우리는 정성을 다하여 그대의 방한(訪韓)을 거족적으로 환영한다. 그대는 그대의 역량을 다하여 탄생케 한 이 어린애가 불우한 환경 가운데서 순조로운 발육이 되지 않았음을 보고 슬퍼하리라. 우리는 지금 무쌍한 귀빈이요, 은인인 그대를 맞이하고자 하는데 울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울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나오는 울음을 어찌하랴! 덜레스! 둘도 없는 덜레스! 그대를 충심으로 맞이하는 이 자리에서 저절로 나오는 이 눈물을 용서하라. 이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대는 알고 있으리라. 덜레스, 눈물 젖은 우리들의 얼굴을 보라.”

처량하고 애절한 기사는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대통령과 외교관과 언론이 간절한 마음으로 손과 발을 맞추어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 애썼다. 정치적인 입장은 각자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애국자들이었다.

이승만은 덜레스와 의기투합한 사이였다. 그들은 서로를 높이 평가하며 존경하고 있었다. 반공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노선도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회담은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았다. 이승만은 책상을 치며 미국의 정책이 틀려먹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미국이 한국을 극동의 방위권에서 제외해 놓고 군사원조 조차 제대로 안해 주는 것을 비판하면서 중국을 포기한 일, 애치슨 발언 등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앞으로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훗날 덜레스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엄청난 지원을 결정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된 것에는 이날의 만남이 끼친 영향도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덜레스는 한국 정부의 안내를 따라 38선을 시찰했다. 그날이 1950618, 전쟁 발발 일주일 전이었다. 다음날 국회에서 덜레스는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다.

여러분들은 혼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인간의 자유라는 위대한 설계 속에서 여러분의 역할을 가치 있게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는 한, 여러분들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덜레스는 약속을 지켰다. 6.25 당일에 일본 교토에서 관광을 하던 그는 급보를 받고 즉각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부로 갔다. 그는 함께 했던 앨리슨 국장과 함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보고서는 직접 트루먼 대통령에게 소개되어 미국의 빠른 참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면과 이승만, 한국 정부의 노력이 비극 중에도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을 눈물겨웠다. 그때 우리에겐 함정이 36척 있었지만, 거의 어선과 다를 바 없었다. 번듯한 전함(戰艦)을 하나 갖는 것은 이승만의 염원이자 해군의 소원이었다.

그 비원(悲願)을 모아 19496함정 건조기금 각출위원회가 발족했다. 나라에 돈이 없고 지원해 주는 외국도 없으니, 군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해군은 봉급에서 성금을 떼어냈고 해군의 아내들은 천막에서 작업복을 지어 팔았다.

석 달간의 노력 끝에 모인 돈이 15천 달러, 중고 전함 한 척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전함 구매단은 미국에 가서 무게 450톤의 전함을 샀다. 이미 퇴역해서 벌겋게 녹슨 배였다. 구매단은 수리공과 페인트공이 되어서 전함을 살리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우리 해군 전함이 된 것이 백두산함()이다.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서 우리 전력이 된 백두산함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백두산함이 움직일 때마다 눈물이 따라다녔다. 가는 곳마다 동포들을 울렸다.

마스트에 태극기가 처음 걸릴 때는 군인이, 포와 레이더를 구하러 간 하와이에선 사탕수수밭 노동자가, 포탄을 사러 간 괌에선 징용갔다가 미처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들이 울었다. 처음엔 배가 너무 초라해, 나중에 그래도 조국의 첫 전함이라는 뿌듯함에 눈물을 흘렸다.

백두산함이 진해에 도착한지 한 달 반이 지나서 6.25전쟁이 터졌다. 백두산함은 혁혁한 전공(戰功)을 올렸다. 부산항으로 접근하던 소련제 수송선을 대한 해협에 수장(水葬)시킨 것이다. 거기엔 북한 특공대 600명이 타고 있었다.

6.25 직전의 역사를 연구해보면, 어느 것 하나 저절로 되거나 공짜로 된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미국의 참전,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 등이 모두 대통령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준비된 것들이었다. 건국 세력들의 눈물겨운 애국심이 있어서, 나라는 보존될 수 있었다.

 

전쟁의 발발과 미국의 참전

비극적인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전통적인 견해는 남침설이다.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공산화를 이루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견해이다. 여기에 반대하여 수정주의 이론이 등장했다. 미국 학자 브루스 커밍스가 제기하여 국내의 좌파 이론가들이 합세한 주장이다.

수정주의자들은 전쟁이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식민지 시기부터 누적된 갈등이 해방 후 크고 작은 반란과 충돌로 이어지다가, 결국 전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네들은 미군정이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한다. 미국이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혁명적인 민주노선을 억압하고 소수의 지주 계급을 옹호했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토지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계급 간의 대결이 고조되며 38선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이론이 수정주의이다.

미군정이 민주 노선을 억압하고 지주를 옹호했다는 비난이나, 남한의 토지 개혁이 잘못되어서 갈등이 커졌다는 주장이나 모두 사실 무근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한 수정주의는 소련 연방의 해체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소련이 멸망하면서 해제된 기밀문서들은 6.25 사변이 철저히 계획되고 준비되어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충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터진 전쟁이 아니라 의도적으로계획된 전쟁임이 입증된 것이다.

그러자 수정주의자들은 슬쩍 말을 바꾸었다. 어느 쪽이 전쟁을 먼저 일으켰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말을 돌렸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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