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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4호]  2017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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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낙동강 전선 위기 속 “모두 총궐기해 끝까지 싸우겠소”
[[제1572호]  2017년 11월  18일]


이승만의 투지(鬪志)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을 때, 미국의 무초 대사는 정부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 남한 전체가 공산군에게 점령된다 해도 망명 정부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초가 한참 열을 올려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순간 무초는 입이 굳어져 버렸고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대통령은 권총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말했다. “이 총으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왔을 때 내 처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모두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코 도망가지 않겠소.”

일흔 다섯, () 대통령의 기세에 무초 대사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놀란 사람은 무초만이 아니었다. 그날 옆에서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 들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날 밤 나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악몽과 환상에 시달렸다. 바로 눈앞에 공산당이 나타나 대통령인 나를 쏘았는데 불발이 되어 우리가 붙잡히거나, 치명상을 입지 않아 목숨이 붙어있는 바람에 그들에게 곤욕을 치르는 환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대통령이 나를 쏘았다. 그런데도 죽지는 않고 피만 흘렸다. 나는 피를 흘리며 공산당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소스라쳐 눈을 뜨면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이 전쟁과 죽음의 공포를 물리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싸우려는 의지는 국군에게도 분명했다. 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국군의 전력 절반이 손실되었다. 누가 보아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에서나 지는 전쟁이면 적군에게 항복하는 병사들이 속출하고 부대가 붕괴되기 마련이다.그러나 국군은 붕괴되지 않았다. 6.25전쟁 때 우리 국군은 단 1개 대대 병력도 항복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무기와 우세한 병력으로 쳐내려오는 적들과 끝까지 싸워 맞섰다.

손자뻘 되는 국군들의 투지는 할아버지 대통령의 눈시울을 여러 번 젖게 했다. 대통령의 위문과 격려를 받은 부상병들은 경무대로 편지를 쓰곤 했다. 대통령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것과, 비록 부상을 입은 몸이지만 남북통일의 대열에서 분골쇄신할 각오이니, 다시 군대에 복귀해서 싸울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감격적인 내용들이었다.

지도부와 국군과 국민들의 항전 의지는 북한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게 만들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쳐내려 가면 남한 전역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다.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이승만 정권을 둘러엎고 공산군과 합세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환영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환상이었다.

소련 군사 고문단과 북한군 참모부는 남한을 획 불면 그냥 쓰러질 수수깡정도로 생각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예측하여 동계 작전구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보급 체계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병사들에게도 경장(輕裝)을 지령하였다.

북한군의 한 작전 명령서는 1개 분대에 모포 1, 3인에 식기 하나를 준비하라고 했다. 마치 하루 이틀의 고지 쟁탈전이라도 벌이는 듯했다. 남침하면 곧바로 남한 내 남로당 20만 당원이 일제히 봉기해서 며칠 안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국군은 1개 대대도 투항하지 않았지만, 인민군은 지휘관이 이탈하고 부대가 붕괴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북한군은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압록강변까지 쫓겨 갔다.

잘될 때는 서로 공을 다투지만, 안될 때는 서로 책임을 미룬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그랬다. 북한 정권의 일인자와 이인자는 117일 만포진의 소련대사관 연회에서 격렬하게 싸웠다. 술을 마신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여보, 박헌영이. 당신이 말한 그 빨치산이 다 어디에 갔는가? 백성들이 다 일어난다고 그랬는데 어디로 갔는가?”라고 비난했다. “당신이 스탈린한테 어떻게 보고했는가? 우리가 넘어가면 막 일어난다고 그런 얘기 왜 했는가?”라며 책임도 추궁하였다.

박헌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니, 김일성 동지, 어찌해서 낙동강으로 군대를 다 보냈는가? 후방은 어떻게 하고 군대를 내보냈는가? 그러니까 후퇴할 때 다 독 안에 든 쥐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했다. “그러니 다 내 책임은 아니다하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김일성의 입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슨 말인가. 만약에 전쟁이 잘못되면 나뿐 아니라 너도 책임이 있다. 너 무슨 정세 판단을 그렇게 했는가? 난 남조선 정세는 모른다. 남로당이 거기 있고 거기에서 공작하고 보내는 것에 대해 어째서 보고를 그렇게 했는가?” 하면서 대리석으로 된 잉크병을 벽에 던져 박살냈다. 전쟁을 일으킨 두 당사자들이 멸망의 위기에 몰리자,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는 추한 싸움을 벌인 것이다.

 

한국전쟁의 신학적 해석

고등학교 시절의 국사 선생님은 전쟁은 인간의 밑바닥까지 다 드러낸다고 말씀하셨다. 평생 쌓아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면, 남의 이목이고 체면이고 할 것 없이 속에 감추인 본능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이승만의 영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신념들을 드러냈다. 신학적인 신념들이었다. 그는 평소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다는 말씀을 자주 인용했다. 그 말씀은 민족에 대한 변함없는 희망을 의미했다.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병이 깊게 들면 그것 때문에 의사이신 예수께 다가갈 수 있으니, 오히려 축복의 기회라는 굳건한 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이승만이라는 인격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비참하고 비극적인 전쟁이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신학을 끊임없이 고백했다. 순식간에 부산까지 후퇴한 와중에서도 그는 긍정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다. 전쟁을 통해서 나라가 망할 것을 걱정하기보다, 전쟁을 기회로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고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신념을 표출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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