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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이승만의 두 카드, 북진통일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제1576호]  2017년 12월  23일]


1950916

나는 본디 대한민국에 그리 충성된 백성은 아니었다. 그의 해나가는 일이 일마다 올바르지 못한 것 같고 그의 되어가는 품이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아서 언제든 한번은 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날이 오려니 하고 예견하였었다.

그러면 인민공화국에 대해선 각별한 향념(向念)을 품었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 인민공화국에 대한 기대는 몇 해 전 민성(民聲)’지의 북조선 특집호 중에서 북조선 문화인 좌담회의 기사를 읽고 갑자기 식어졌었다.

이기영, 한설야, 이태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말끝마다 우리의 영명한 지도자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고 모든 사회현상이, 심지어 우순풍조(雨順風調)한 것조차 김일성 장군의 영명하신 지도의 덕택인 것처럼 떠든 것이 비위에 맞지 않아서 그 후에 언젠가 철()을 보고 그 자들이 모두 환장을 해서 그런 것일까. 어쩌면 문화인이란 것이 그처럼 입을 갖추어 아첨할 수 있는 것인가하고 욕설을 퍼부어준 일도 있었다.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북한도 잘못했지만 남한도 잘한 것 없다는, 지식인 특유의 냉소적인 중립성을 보여주던 한 역사학자가, 대한민국 방송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감상주의자로 변모하게 만든 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민주주의를 내세운 공산주의자들의 해괴한 인민재판과 조국 통일을 내세운 처참한 살육을 몸소 겪으면서 이 나라 백성들은 확고한 노선을 가진 국민이 되었다. 전쟁은 비극이었지만, 비극 속에 희망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지닌, 국민의 탄생이었다. 그 국민들이 공산군을 물리치고 자유를 수호하고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루어 낸 발자취가 우리 현대사였다.

 

로 읊은 전쟁의 풍경

전쟁을 이끌어가는 최고 지도자에게 가장 힘들고 성가신 일은 내부의 분열이다. 6.25전쟁 기간 중 이승만은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전쟁 초기,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을 때, 국회는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해임을 결의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으로서는 적군과 싸우면서 동시에 국회와 싸워야 하는 힘 빠지는 상황이었다. 그날 밤 이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붓과 벼루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먹을 갈았다. 그는 먹물을 듬뿍 찍어 자신의 깊은 상념들을 적었다. 우리 역사에 정통한 그에게 쫓겨 신의주까지 피신한 임금의 한탄이, 대통령의 탄식이 되어 글씨로 옮겨졌다.

변방에 뜬 달 보고 통곡을 하니 / 압록강 바람은 가슴을 에이네 / 임금 신하가 치욕을 당했건만 / 차마 오늘 후에도 서인 동인으로 싸울 건가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통일을 목전에 앞두고 쫓겨가는 상황에서 누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말들이 많았다. 대통령은 제비를 읊음이라는 시를 지었다.

강남 갔다가 돌아와 재잘거리는 제비들 / 제 집은 어디가고 잿더미만 남았다고 / 이러니 저러니 말들 삼지 마소 / 난리통이 슬프지 않은 이 뉘 있으리

대통령은 시간이 나는 대로 국민들을 찾아갔다. 부산까지 밀려갔던 어느날 대통령은 부녀자들이 낙동강 장터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들은 싸우러 나가고 여자들만 남아 있었다. 대통령은 전쟁의 풍경같은 시를 썼다.

며느리는 생선바구니 이고 시어머니는 소를 몰고 / 낙동강 십리 길에 장보러들 가는 구나 / 아우 형 전쟁에 다 나가고 전쟁은 상기 아니 멎고

 

 

한미 동맹,

한반도 평화의 조건

 

반공 포로 석방,

이승만의 결단

전쟁에 참가했던 어느 미군 병사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끝도 없는 전쟁이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질 수도 없다. 우리는 헤어날 수도 없다.' 그것은 곧 미국 지도자의 마음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이상한 전쟁에 말려들어서, 미국에게 대단치도 않은 나라를 위해서 5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다치며 엄청난 물자를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은,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늪이었고 진창이었다. 전쟁을 시작한 트루먼 대통령의 인기는 날로 떨어졌다. 현직 대통령이 출마를 포기한 1952년의 선거에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아이젠하워였다.

아이젠하워는 2차 대전의 영웅이었다.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성공시켜서 히틀러를 끝장 낸 인물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선거 공약이 한국전쟁 종식이었다. 전 세계적인 규모로 벌어진 2차 대전도 끝낸 그였기에, 한국전쟁 정도는 얼마든지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믿었다.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휴전협정에 박차를 가했다.

승부사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대해서 두 개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첫 번째는 북진(北進) 통일론이었다. 이승만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킬 수 있는 휴전에 강하게 반발했다. 오직 무력으로 북진하여 공산주의자들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결사적인 휴전 반대는 메아리 없는 고독한 외침일 뿐이었다.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을 환상이라고 일축했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환상에 가까웠다. 유엔군 없이 국군만으로 북진하여 중공군과 북한군을 모두 물리치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승만도 엄연한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진 통일과 휴전 반대를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더욱 거세게 밀고 나갔다. 나아가 이승만은 만약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중국 군대가 압록강 이남에 계속 주둔한다면,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임된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회수하여, 국군 단독으로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결의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통보하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과 헤어지겠다” “우리에게는 자살할 권리가 있다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미국을 몰아붙였다. 이는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었다. 이승만이 이처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그의 두 번째 카드를 위해서였다. 그것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체결이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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