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592호]  2018년 4월  28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클로즈업
예수의향기(와이드,믿음의기업)
금주의 초대석
우리교회 이사람
건강관리기법
추억의사진
대인물열전
Home > 피플> 대인물열전
70.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 철수하려던 미국의 회유에 당당히 맞섰던 이승만
[[제1579호]  2018년 1월  13일]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미군이 떠난다면, 망신창이가 된 나라와 폐허가 된 국토만이 남는다. 그 국토는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그 너머에는 소련과 중공이 여전히 건재해있다. 만약 북한이 소련 및 중공과 연합하여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대한민국은 속수무책이 된다. 지리적인 문제도 있다. 중공과 소련은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쳐내려올 수 있지만, 미국은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미국이 또 다시 참전할지도 미지수이지만, 설령 참전한다고 해도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승만은 휴전을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고 규정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에게 한국이 휴전 협정을 수락하는 것은 마치 아무런 항의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는 집요하게 미국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이 대통령의 거듭된 조약 체결 요구를 거절했다. 상호 방위 조약 대신 미국이 이승만을 회유하려고 꺼낸 카드는 대제재 선언(The Greater Sanctions Declaration)’이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약속이 담긴 미끼였다.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시켜준다. 미군의 대부분은 오키나와로 철수시킨다. 한국의 안전은 16개의 유엔 참전국들이 공동으로 보장한다. 만약 적이 쳐들어올 경우 전쟁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을 공표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이 입장을 525일 주한 미국대사 브리그스와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를 통해 이승만에게 전달하였다. 하지만 우리 민족 최초의 국제법 박사이며, 미국으로부터 숱한 거절과 냉대를 받아왔고, 결국에는 독립과 건국에 있어서 미국의 논리를 이긴 적이 있는 이승만이 그 정도의 회유에 넘어갈 리 없었다.

16개 나라가 공동으로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우리의 건국 과정에서 유엔 8개국이 위원단을 파견했었다. 8개국 간에도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의견이 달라서 결국에는 모윤숙을 활용한 미인계로 겨우 5.10 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었다. 16개국도 마찬가지로 이해 관계가 복잡했다. 전쟁 중에도 영국은 미국에게 한국을 포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었다. 한국을 위해서 싸워준 나라들 이었지만, 그 후에 공산당에 호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승만은 조국의 안전을 다른 나라들의 선언이나 협정 따위에 맡길 수는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말 뿐인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약, 더 나아가 한국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미군의 주둔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휴전 회담을 진행했다. 한국 대표가 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195368일 유엔군과 공산군의 대표들은 휴전 의제의 마지막 관문인 포로 교환 협정에 합의했다. 이승만은 휴전 협상에 반대하며 유엔 참전국의 대제재 선언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그리고 주권 국가의 대통령으로 당당하게 선포했다. “당신들은 유엔군을 모두 철수시켜도 좋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누구한테도 우리를 위해서 싸워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 우리의 잘못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만 현재의 상황에서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조를 약속해 줄 수 없습니다.” 아이젠하워에게 협조해 주지 못하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승만은 약소국이 어쩔 수 없이 강대국에게 끌려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힘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본때를 보여주어야 했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군사력의 절반을 잃어버렸던 나라가, 함정(艦艇)이라고는 외국에서 쓰다가 버린 중고품 한 척밖에 없는 나라가, 3년간의 전쟁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산업 시설의 80%가 파괴되어 버린 나라가, 거리에는 고아와 거지가 들끓는 나라가 무슨 수로 세계 최고의 강대국에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이승만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그는 미국이 어떻게 해서든지 휴전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이승만 자신도 휴전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휴전의 판을 깨버리면 그들은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휴전을 깨버릴 수 있는 방법, 그럼으로써 미국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 미국 지도자들을 한국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포로 송환 문제였다.

어떤 전쟁이든 휴전 협정에서는 포로 교환 문제가 다루어지기 마련이다. 양쪽이 어떠한 조건으로 포로를 교환할 지가 중요한 이슈가 되곤 한다. 문제는 공산군 포로 가운데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승만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소수의 공산당이었지 북한 주민들은 아니었다. 강제로 끌려나온 북한의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공산군복을 입고 싸우는 과정에서, 혹은 포로가 된 이후에,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깨닫고 반공 노선으로 돌아선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포로 교환 협정에 따라 북한으로 돌려보내져야 했다. 이승만은 반공 포로들을 석방시키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엄청난 행동이었다. 한국 전쟁의 휴전 협정은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휴전 협상이었다.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서 성사된 협상이 완전히 무효가 될 수도 있는 결정을 이승만이 내린 것이다. 그것은 이승만의 결단이었고 깡패 짓이었고 애국심이었고 동시에 민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만약 포로 송환 협정에 의해서 반공 포로들이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또는 죽음보다 더한 비참이었다. 실제로 스탈린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병사들을 모두 숙청해버렸다. 자유로운 외부 세계를 보고 돌아온 이들이 소련의 독재 체제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돌아온 병사들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공산주의자들이 더군다나 반공 노선으로 돌아선 포로들을 잔인하게 처리할 것은 자명했다. 이승만은 그들을 살리고 동시에 한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를 지켜준 유엔군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전무후무한 행동을 계획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59. 초락도 금식 기도..
<94-총회총대5>
332. ‘기도합니다’와..
147. 철종의 가계도 ..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박래창 장로(전국장로회..
만평,만화
청년의 기개를 펼치길 기대!
땅끝까지 주님 주신 사명 전하겠.....
항구적 평화회담 되길 기대해 봄.....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