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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4호]  2018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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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이승만을 제거하려던 미국, 이승만 승부수에 결국 굴복”
[[제1582호]  2018년 2월  3일]

다급한 쪽은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로버트슨 특사였다. 이승만은 미국 없이도 끝까지 싸우겠다며 험담을 늘어놓고 한국민은 일치단결하여 우리를 팔아넘기지 말라고 데모를 벌이며, 미국 여론도 이승만에게 호의적이었다. 결국 로버트슨은 남한의 재건을 위한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함으로써 흥정의 판돈을 질렀다. 남한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전시장이 되도록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이승만에게 확인하였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전시장이 됨으로써 미국은 한국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붓게 된다.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최전선에 있는 한국이 발전하고 번영해야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번영을 이끌어 준 중요한 개념이 이승만의 험담에 시달리던 로버트슨에게서 나왔다.

이승만은 경제 원조는 물론 안전 보장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결국 로버트슨은 한국과 그 주변에 미군을 주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선언이나 조약의 차원을 넘어 실제로 한국을 지켜줄 수 있는 군사력의 배치를 약속한 것이다. 두 사람은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에 합의했다. 712일 한미 양국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이때 이승만이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썼는지는 훗날에 밝혀졌다. 197583뉴욕 타임즈는 시한이 만료된 국가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그것이 에버레디 작전(Operation Eveready)’ 이었다.

내용은 휴전을 방해하는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아이젠하워 대통령, 덜레스 국무장관, 그리고 미군 합동 참모회의 본부가 이 대통령을 체포하고 한국을 다시 잠정적인 미군정 통치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검토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승만은 목숨을 걸고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다. 도박의 결과는 대박이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 경제 지원을 한꺼번에 받아냈다. 그 대가로 한국이 지불해야 하는 것은 휴전 협상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각서 한 장이었다. 우리가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미국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로 일찍이 어느 약소국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강대국의 지원을 받아냈다.

허문도의 논평처럼, 한국은 초토화된 국토의 전후 복구비와 경제 원조, 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 등을 구걸이 아니라 미국을 봐주는 모양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 최고의 외교관, 이승만의 업적이었다.“

회담 과정에서 로버트슨은 적지 않게 고생했다. 끊임없는 이승만의 험담과 협박을 들어야 했고 다양한 경로로 치고 들어오는 논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승만의 애국심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간 로버트슨은 의회에 제출한 보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만, 한마디로 그의 주장은 공산주의자와의 싸움이다. 우리 동맹국 모두가 그의 정신을 지녔다면 세상은 덜 시끄러울 것이다.”

 

이승만 - 덜레스 회담과

한미 상호 방위조약

휴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이승만의 약속에 따라, 미국은 휴전 협정에 박차를 가했다. 반공 포로 석방에 대해서 미국을 거세게 비난했던 공산 측도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었으므로 신속히 휴전에 동의했다. 결국 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은 727일 휴전으로 정지되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 이승만-로버트슨 회담의 결과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미국 국무장관 덜레스가 84일 한국을 방문했다. 덜레스와 이승만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조지 워싱턴과 프린스턴 동문이었고, 덜레스가 전쟁 발발 직전에 국무부 고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 한 바 있었다. 델레스는 음으로 양으로 한국과 이승만을 도와주었던 인물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즉각적으로 참전하도록 유도했다. 이승만 제거 계획인 에버레디 작전을 놓고 대통령 및 군 수뇌부와 회의를 할 때도 이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편에 섰다. 미국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약소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는데 이 대통령을 체포하면, 그것은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여러 면에서 고마운 인물이다.

6.25와 덜레스의 인연은 참으로 깊었다. 전쟁 발발 일주일 전에 한국을 방문했고 국무장관이 되어 휴전 협상을 성사시킴으로써 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6.25전쟁이 덜레스와 함께 시작되어 그와 함께 끝난 것이다. 이승만과 덜레스의 회담은 사실 그 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이승만이 포로 석방이라는 폭탄을 던지자, 국무장관 덜레스가 이승만을 초청했다. 이승만은 바빠서 갈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덜레스에게 오라고 했다. 한국 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의 명줄을 실제로 쥐고 있던 미국 국무장관에게, 내가 시간이 없으니 당신이 비행기 타고 오라고 했으니, 대단한 배짱이다. 덜레스 역시 비상 상태에 빠져 있던 워싱턴을 비울 수 없어서 특사 로버트슨을 파견했다. 그리고 휴전 협정 이후 결국에는 덜레스가 제 발로 찾아왔다. 회담이 서울에서 이루어진 것 자체가 이승만이 판정승이었다.

덜레스도 그 점을 인정했다. 이승만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나 자신이 직접 이 곳으로 온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소. 강대국의 국무장관이 약소 국가 대통령을 만나 자기들의 정책을 약소국의 정책과 합치되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멀리 바다 건너 찾아 온 것은 역사를 통해 한 번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최초의 사건이오.”

이승만은 그의 평생을 통해서 줄곧 성취해왔던 그 최초를 여기에서 또 한 번 획득했다. 솔직한 덜레스에게 이승만도 솔직히 생각을 밝혔다. 그는 우리 민족 전체의 생명과 희망이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달려있음을 인정했다. 아울러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미국은 한국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임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덜레스와 이승만은 미국이 한국을 지켜준다는 큰 틀에서는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규모에 있어서는 치열하게 맞부딪쳤다. 서로를 높이 평가하고 내심 존경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국가를 위한 충성심도 그에 못지않게 강했다. 기본적으로 이승만은 더 많은, 확실한 지원을 요구했고, 덜레스는 이만하면 충분하며 그만큼도 미국 입장에서는 커다란 부담이고 양보하는 입장이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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