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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이 땅엔 전쟁이 없었다”
[[제1583호]  2018년 2월  10일]


이승만과 덜레스 간 두 사람의 견해에 불꽃이 튄 것은 일본 문제였다. 이승만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일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불만이었다. 한국 전쟁을 통해서 일본 경제가 크게 부흥한 것도 못마땅했다. 36년간이나 우리를 착취했던 일본이 우리의 비극을 통해서 돈을 벌고 다시 강대국이 된다는 것을 이승만은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회담을 지켜본 한국과 미국 양측의 문화와 정치에 모두 정통한 로버트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의 모든 정치인들 중에서 이 두 정치가는 공산주의 위협의 성격과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으로 뜻을 함께 한 까닭에, 이 장면에는 슬픔과 기구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덜레스의 표현대로 전쟁 없이 소련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절묘한 부전승(不戰勝)의 전략을 쓸 줄 아는 도박사의 기질을 가진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기질에 있어서도 이 사람들은 닮은 데가 많았다... 두 사람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높았다. 두 사람은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역할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우정과 상호 존경 속에 이별을 고하였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예정대로 추진되었다. 88일 미국 국무장관 덜레스와 한국 외무장관 변영태는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방위조약에 가조인했다. 이 역사적인 조약은 19531117일부터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가능케 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문과 6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조약은 제1조에서 조약을 체결한 당사국은 양국이 합법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외부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국제적 분쟁을 유엔의 정신에 따라 가급적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기로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에 의해 위협받을 경우, 2조에서 상호 협의 하에 단독이든 공동이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했다. 3조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 두 조항만을 놓고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할 경우 미군이 자동적으로 개입한다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헌법상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의회에 승인을 요청할 때, 의회가 거부하면 미국은 참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4조에서는 한국의 전쟁에 미국이 즉각적으로 개입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수락한다라는 조항이다.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의회의 승인없이 즉각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만약 공산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 미국은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참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승만이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로버트슨, 덜레스와 길고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았던 이유가 바로 즉각적이고 자동적인미국 참전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즉각적이고 자동적인이라는 언급은 없었지만, 사실상 자동 개입을 보장함으로써, 민족의 생존을 지키려는 이승만의 노력은 구체적이고 확실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5조는 양국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비준되고 그 비준서가 교환된 다음 발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6조는 조약은 한미 양국이 원하는 한 무기한으로 유효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무기한 유효한 조약에 의해서 1953년 이후 이 땅에서는 전쟁이 없었다.

 

닉슨. 이승만에게

한 수 배우다

상호방위조약은 체결되었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한국의 견해가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휴전으로 한국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휴전은 글자 그대로 휴전일 뿐, 종전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에게 조국의 분단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증강하여 북진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이승만의 한결같은 신념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지원은 합의가 되었지만, 그 규모에서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다. 이승만은 최소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과 대등한 수준의 대규모 무력 증강을 요구했다. 미국은 어차피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므로, 그 정도까지 증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쉬운 쪽은 미국이었다. 반공 포로 석방 사건으로 미국은 이승만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인물임을 확실하게 배웠다. 만약 이승만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은 절대로 말려들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이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아무리 말려들지 않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정해 놓아도, 미국이 난감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공산군이 한국에 있는 미군을 빼놓고 한국군만을 구별하여 공격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미군이 공격받아서 전사자가 생기면 보복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대통령이 북진을 명령했을 때 공산측은 당연히 미국의 식민지인 한국의 괴뢰 정부 수반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공격했다고 선전할 것이 분명했다.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하든지 이승만을 막아야 했다. 이 임무를 맡아서 한국을 방문한 이가 당시의 부통령, 훗날의 대통령 닉슨이었다. 한미 동맹을 맺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승만의 상대가 점차 높아진다. 로버트슨 국무부 특사, 덜레스 국무장관, 닉슨 부통령, 최종적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이어졌다. 이승만의 위상이 높아지고 대한민국의 중요성이 강조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5311, 서울에 온 닉슨은 주한 미 대사관에서 한국과의 협상 팀을 이끌고 있는 아서 딘을 만났다. 그는 이승만을 압박하려는 계획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빨을 뽑고 그로부터 무기를 빼앗아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상황이 좋을 때만 친구인 척 하는데 반해 이 대통령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입니다.” 이승만을 알아주는 미국인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야하는 대사관에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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