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15호]  2018년 10월  20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클로즈업
예수의향기(와이드,믿음의기업)
금주의 초대석
우리교회 이사람
건강관리기법
추억의사진
대인물열전
Home > 피플> 대인물열전
80.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이승만의 눈과 귀를 막은 측근들의 악랄한 부정부패
[[제1591호]  2018년 4월  21일]


제헌 국회의 이승만은 정당을 초월한 의회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상이한 견해의 자유로운 표현과 비판에 대한 관용적 자세를 강조했다. 다수의 결정이 자신의 의지와 배치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지적했다. 될 수 있으면 합의를 이루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4대 국회에서는 반대 의견을 힘에 의해 묵살시켜버리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의회의 갈등 처리 기능이 마비되어 갔다. 이것 역시 4.19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종래의 연구는 4.19를 정치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성격이 강했다. 자유당의 부패, 뒤이은 부정선거가 국민들의 궐기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물론 타당한 해석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 못지않게 경제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인간에겐 가장 기본적이면서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우리 경제는 미국의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미국은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원조액을 줄여나갔다. 한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19573.8억 달러였던 원조는 19602.4억불로 줄어들었다. 원조액이 37%나 감소한 것이다. 이 당시 대한민국은 국가 재정의 70%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의 나라 도움에 의존해서 나라 살림을 꾸려 가는데, 도움이 끊기니, 살림이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는 휘청거렸다. 19594.8%였던 경제 성장률은 19602.5%로 떨어졌다.

원조는 줄고 성장률은 떨어지는데 실업률은 올라갔다. 특히 대졸자들의 실업률이 심각했다. 이는 6.25 기간 중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서 앞을 다투어 대학에 들어가는 바람에, 대학생 숫자가 크게 늘어난 데도 원인이 있었다.

그 시대를 겪었던 송복(宋復)“4.19의 원인이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촉발 요인을 지적한 것이다. 실업자 폭발 사태가 4.19를 만들어냈다. 당시의 대학생과 산업 구조를 대비시켜보면 1명 취직시킬 능력인데, 18명이 졸업했다. 대졸 실업자는 폭탄과 똑같다. 거리로 굴러다니던 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나오면 커튼을 거리에 드리운 것처럼 암담했다. 실업자 폭발 사태가 4.19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구는 늘어가고 일자리를 만들기는 어렵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실업율은 높아지고, 참으로 암울한 시절이었다.


부정의 종합세트, 3.15 선거

이승만의 후계자로 지목된 인물은 이기붕(李起鵬)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승만에게 절대 복종하는 스타일이었다. 무난한 성품이었기에, 미국에도 선호했다. 후계자가 결정되면서 이승만을 둘러싼 인의 장막은 더욱 두터워졌다.

백선엽은 이렇게 회고한다. “후계자가 떠오르고 후계자 측의 인물들이 주변을 에워싸게 되자 대통령의 지도력 감퇴가 날이 갈수록 나에게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군을 포함해서 요직의 인사에도 이기붕 측의 간섭이 개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60년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열렸다. 자유당에서는 이승만과 이기붕, 민주당에서는 조병옥과 장면이 출마했다. 대통령 선거라면 관심사는 당연히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였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당시에는 누가 부통령이 되는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여러 가지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부(國父)로서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이승만을 이기기는, 그 누구에게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승만이 85세의 고령이라,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므로, 부통령직을 둘러싼 대결이 치열해졌다. 이는 민주당의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조병옥과 장면은 서로 부통령 후보가 되고자 했다. 결국 장면이 부통령, 조병옥이 대통령에 출마했다. 하지만 선거 한 달을 앞두고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조병옥이 사망했다. 이로써 이승만의 재집권은 확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통령 선거가 중요했는데, 조병옥의 사망으로 선거는 사실상 부통령을 뽑는 선거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로 나선 이기붕의 경쟁력이 약했다는 점이었다. 1956년의 선거에서 대통령에는 이승만이 당선되었지만, 부통령으로는 장면이 선출되었다. 1960년의 선거에서도 장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조병옥의 사망으로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없었던 민주당은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눈물로 부통령만이라도 뽑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자유당 지도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기권표에 자유당을 기표해서 무더기로 집어넣기,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공개투표 강요, 금품 살포를 비롯한 금권 선거, 정부 기관들을 모두 동원하는 다양한 방법의 관권(官權) 선거가 자행되었다.

심지어 모든 경찰관들에게 미리 사표를 받는 악랄한 방법도 썼다. 선거에서 여당의 표가 확실하게 나오지 않으면, 관할 경찰서와 경찰관들을 해고해 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1960년의 국무회의는 부정 선거 내각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회의에서는 공개적으로 부정 선거 논의가 이루어졌다. 선거 일주일 전인 38일의 국무회의록을 보면, 그들은 마치 승리가 확정된 것처럼 말했다.

 

내무장관: 전 공무원의 일치단결된 지지도 받고 있으니 자유당의 승리가 거의 확실하다.

체신장관: 경북 달성군은 민주당의 본 고장 같은 곳인데 열렬한 민주당원이 각하를 지지하고 있다.

교통장관: 공무원 부인까지 활동하고 시읍면장이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승만 정권은 그 어느 내각보다도 기독교인 비율이 높았다. 3.15부정선거를 집행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내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부정을 저지르는 일에 앞장섰다. 해방, 독립, 건국, 전쟁의 험난한 길에서 이 나라 역사를 이끌어 온 견인차 역할을 했던 기독교인들의 어두운 면이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거룩한 대한민국네트워크 대표>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타락한 천사, 사탄, 루..
기드온의 ‘금 에봇’
147. 철종의 가계도 ..
59. 초락도 금식 기도..
332. ‘기도합니다’와..
<94-총회총대5>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장로] 평생을 교회·..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직장인.....
가을엔 기도로 우리의 영혼을 따.....
우리 나라, 우리 글자, 한글 사.....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