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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제1592호]  2018년 4월  28일]


315일 선거 당일, 계획적인 부정이 전국에 걸쳐서 일어났다. 오후 3시에 부정에 항의하는 민주당이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민주당 마산지부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최초로 일어났다.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했다. 그 와중에 10여 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투표 부정에 이어서 개표 부정까지 자행했다. 개표 결과 이승만 92%, 이기붕 78%로 자유당의 압도적인 승리라고 발표했다.

날짜를 확인해 보면, 315일은 이승만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1898315일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조선에서 각종 이권을 침탈하고 있던 러시아에 맞서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키기 위한 애국 집회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숫자인 1만여명의 군중이 집결했다. 그들 앞에 등장한 연설가는 젊은 애국자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탁월한 언변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군중의 대표로 외무 장관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성난 민심에 놀란 러시아는 민중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러시아 고문들을 철수시키고 한로은행(韓露銀行)도 폐쇄시켰다.

315일에, 스물세 살의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중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육십 이 년이 흘러 315일에, 85세가 된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부정 선거의 최종 책임자였다. 315일에 일어나서 315일에 무너졌으니, 무상(無常)한 세월이요, 무상한 인생이다.

이어서 317일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되었다. 벌써 1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대통령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승만은 유혈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당의 선거 승리를 격려하고 야당의 주장을 꾸짖었다.

안 될 일을 하다 실패하고 나서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마산 사건 등의 책임을 자유당에 밀고 있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며.”

국민들은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대통령을 둘러싼 인의 장막이 얼마나 견고하며 어처구니없는 지를, 그리고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큰 지를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마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것이 시위의 주된 내용이었다. 자유당은 강경하게 대처했고 한 달을 지나면서 사위는 조금씩 수그러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411,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마산 앞바다에 한 구의 시신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것은 부정 선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金朱烈)의 시신이었다. 김주열은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南原)을 떠나 마산(馬山)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시위에 참여했다. 그리고 열 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신으로 떠올랐다. 전 국민의 시선은 마산으로 집중되었다. 잦아들던 시위의 불길은 다시 거세가 타올랐다.

이승만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은 시점은 이 무렵이었다. 412일의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김주열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며 선거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국무위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선거가 잘못되었다고 들은 일은 없는가?”

양심이 살아있었다면, 그때 소위 장관이라는 자들이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 했어야 했다. 사실은 부정 선거였고 부작용이 있었고 불의가 저질러졌다고, 대통령 모르게 우리들이 일을 꾸몄다고, 더 사태가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자백했어야 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간파한 이승만은 이런 말을 남겼다. “대통령을 사임하고 다시 자리를 마련하는 이외에도 도리가 없다고 보는데.”

이승만을 비판하는 이들은 흔히 지나친 권력욕을 지적했다. 정치인에게 권력욕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후의 장면에서 보여지듯, 이승만에게는 권력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다. 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던 부정 선거 사태를 접하게 되자, 즉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눈과 귀는 가리워져 있었다.

시시각각, 정권의 최후는 다가오고 있었다. 4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평화로운 집회였다. 그런데 학생들이 데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깡패들이 습격했다. 자유당 집권 내내 악명을 떨친 정치 깡패들이었다. 그것은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예고한 사건이었다.

나라가 깡패들을 동원해서 정의를 외치는 학생들을 구타했으니, 민심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419일 대학생과 시민들이 합세한 시위가 서울을 뒤덮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이승만 대통령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군중들은 국회의사당에서 경무대로 진격했다.

바로 그 시각에 이승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자유당의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렸다. 사태의 심각성은 알아가면서도 원인은 모르고 있던 이승만이 발언했다.

오늘은 내가 이거 무슨 난중(亂中)에 앉아있는 것 같아, 사람들이 나를 나가라고 하는 모양인데 순순히 좋게 내주려고 해. 나는 무슨 이유인지, 무슨 까닭인지를 똑똑히 알았으면 해. 뭣인지 까닭을 알아야 해결할 것 아냐?”

그 지경이 되었는데도 장관들은 여전히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했다. 홍진기 내무부 장관은 마산 사태는 1차로 민주당이 선동했고, 2차로 공산당이 조종한 듯하다고 보고했다. 최재유 문교부 장관은 학생들은 선동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배후 조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언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공산당에게 뒤집어씌운 잘못된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피해를 입은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 피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반공 세력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반공을 말하면, 곧이듣지 않고 무언가를 은폐하려 한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공산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있는데도, ‘반공 조작으로 듣는다.

경무대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경무대 안에서는 장관들이 공산당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었고 밖에서는 국민들이 혁명을 하고 있었다. 국무회의에서는 거짓말이 난무했고 거리에서는 진실을 향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 회의에서까지 대통령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국무위원들은 421일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아마 그때쯤은 이승만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승만은 부정 선거로 당선된 이기붕에게 사퇴를 요청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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