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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하와이 유폐, 그리고 최후
[[제1595호]  2018년 5월  19일]


흔히 이승만 박사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 하와이로 망명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동욱의 지적처럼 그것은 망명이 아니라 유폐(幽閉)였다. 국어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망명이란 망명도주(亡命逃走)의 준말로써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제 나라에 있지 못하고 남의 나라로 피하는 일이다. 물론 자동사(自動詞)에 속한다.

그러나 이승만의 하와이행은 자의(自意)로 떠난 정치적인 망명이 아니었다. 지친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2~3주 쉬어갈 목적도 있었고, 4.19 이후 소용돌이치는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잠시 자리를 비켜주려는 뜻도 있었다. 이승만은 바람 쐬고 오시라는 권유를 받아들여 비행기에 올랐다.

부득이하게, 잠시 계획했던 하와이 체류는 그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이승만은 조국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국내의 정치 상황은 끝내 이승만의 귀국을 막았다. 우리의 건국 대통령은 유폐된 채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전 생애를 조국을 위해 바쳤던 이승만이 본인도 모르는 채 조국과 작별하던 날, 이 박사 내외는 하와이 교포 월버트 최가 마련한 전세기에 올랐다. 세관원이 올라와 소지품을 뒤져보니, 4개의 트렁크 뿐이었다.

하나는 이승만 박사의 옷, 하나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옷, 또 하나는 소품과 기내에서 먹을 점심과 약품이 든 상자, 나머지 하나는 이 박사가 평생 사용해 왔던 고물 타이프라이터가 전부였다. 평생 청렴하고 검소했던 대통령 내외의 면모가 다시금 확인되는 장면이다.

광복을 맞아서 빈손으로 돌아왔던 이승만과 프란체스카는 역시 빈손으로 사랑하는 고국을 떠났다.

하와이에서 이승만은 양자(養子)를 맞았다. 처음 아들 인수를 맞이했을 때, 이승만은 이런 질문부터 던졌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돼 가지?” 이인수는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잘 되어갈 것입니다. 염려 마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이승만은 그런가? 나라가 잘 되어 간다면 그것은 참 좋은 일이야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동안 노인의 얼굴에 회한의 빛이 서리는 듯했다. 그러다가 곧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뜨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데너는 남이 잘된다, 잘된다 하는 소리 아예 믿지 말라. 이렇게 절단이 난 걸그렇게 우리나라 일이 쉬운 게 아니야.”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측근들에게 귀가 막히고 눈이 막혀서 그저 다 잘되는 줄 알았던 노정치가의 후회가 담긴 말이었다. 이승만은 아들 이인수가 곁에 앉아있으면 더듬더듬 말을 건네곤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누가 남북통일을 하려는 이가 있나?” 이인수는 으레 생각해 둔 대답을 했다. “우리 국민의 소원이니 모두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박사는 말했다. “그까짓 생각만 해서 뭐해? , 이승만이가 한바탕 했으면 또 누가 나서서 해야 할 게 아니야. 내 소원은 백두산까지 걸어가는 게야.”

이승만은 조국을 그리워하고 통일을 염원하며 날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만나는 이들에게 이것저것 한국에 대해서 들어보면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시국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일 국교 정상화가 추진되었다. 한일 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런 상황에서 철저한 반일(反日)주의자였던 이승만의 귀국은 당시의 정부에겐 커다란 부담이었다.

결국 이승만의 귀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87세의 이승만은 그날 이후 다시는 걷지 못했다.

날로 건강이 악화된 이승만은 마우나라니 요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 누운 이승만을 자주 찾아간 오중정은 이 박사가 좋아하는 노래를 병실에서 자주 불러드렸다고 한다. 남궁억 선생이 작사하여 찬송가에 수록된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누군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1965719, 향년 91세로 이승만은 세상을 떠났다. 우리의 건국 대통령이 외국의 요양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하와이에서 진행된 영결식에는 한국과 미국의 인사들과 교포들이 참석했다. 그중에 보스윅이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50년 친구였다. 일찍이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상해에 갈 때, 중국인 노동자들의 관을 실을 배에 이승만과 임병직을 밀항시켜 준 바로 그 친구였다.

쓸쓸한 말년을 맞이한 이승만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는 길에 생활고(生活苦)에 시달리던 프란체스카 여사의 손에 돈을 쥐어주기도 했던 친구였다.

보스윅은 사람들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오랜 친구의 관 앞에 섰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 되어 고인의 얼굴에 덮여 있는 베일을 걷어내더니, 이승만 박사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며 울부짖었다.

내가 자네를 안다네! 내가 자네를 알아! 자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는지, 자네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가 잘 안다네! 친구여! 그것 때문에 자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자네가 그토록 비난받고 살아 온 것을 내가 잘 안다네! 내 소중한 친구여.”

양자인 이인수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절규였다.

1965727일 오전 이승만 대통령의 유해는 국립묘지에 도착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전에 영결식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조사(弔辭)를 정일권 국무총리가 대독(代讀)했다.

정일권 총리는 이승만 대통령 휘하의 육군 참모총장으로 6.25전쟁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이승만으로부터 단독 북진을 결행하여 38선을 넘으라는 명령을 받았던 그가 마침내 사선(死線)을 넘은 대통령의 영결식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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