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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귀 장로의 원로를 찾아서1-김건철 장로>
[[제1593호]  2018년 5월  5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행복하게, 세상을 아름답게!”

주의 은혜로 남은 생 마지막까지 빛의 자녀답게 소금처럼 살고자


- 동숭교회 원로 김건철 장로(본보 명예사장)

 

내가 구순을 맞이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어느새 보니 90년이나 산거야. 하나님의 은혜지. 내가 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너무 감사해요.”

지난 4월 생일을 맞으면서 김건철 장로(동숭교회 원로)는 구순을 축하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턱(?)을 몇 번이나 냈다. 사실 구순이라는 명목이 없어도 식사를 대접하고 후 원하는 일은 김건철 장로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작정하고 계획 아래에 그러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감동하거나 주변의 간절한 요청에 그 자리에서 예정에도 없던 큰돈 을 턱 내놓는 일도 왕왕 있어왔다. 주저함이 나 인색함 없이, 오히려 김 장로가 웃음을 터뜨리며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렇듯 아낌없고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 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고, 하나님이 나 를 먼저 사랑하시니까.”

김건철 장로의 싱거운(?) 대답이다.

나는 모태신앙인이니 내가 믿기도 했지 만 하나님이 먼저 내게 신앙심을 주신 거예요. 나는 믿음과 사명을 주신 데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을 해. 너무 감사하니까. 내가 복을 지나치게 많이 받았어. 남달리 받은 게 많다 고 생각해요. 복 받았으니 베풀어야 되지 않겠나. 성경에도 마태복음 712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지 않았어. 나는 그 말씀을 늘 생각 해. 그래서 내가 대접하려고 해. 대접이라는 게 음식대접 같은 것도 있지만,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미소 지으면서 (이런 것도 대접이지).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행복하게, 세상을 아름답게, 앞장서서 기도하며 실천해야겠다, 나 자신이 그런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는 거예요.”

김건철 장로는 인복(人福)도 꼽았다.

돌아보면 모든 일이 다 뜻밖에 일어난 거 야. 내가 애경사 판매부장으로 있으면서 월성 비누 사장과 일 때문에 만나게 됐는데 세탁비누만 취급하던 그 사람이 화장비누를 만들고 싶다며 나랑 같이 하자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 내게. 그래서 화장비누 사업을 시작하자마 자 우리나라에 화장비누가 생활필수품이 된 거야. 그 상권을 80% 이상 우리가 갖게 돼서 사업이 아주 잘 되었지. 나중에는 주택사업을 한 30년 했어요. 그때도 뜻밖에 좋은 사람들 을 만났고. 다 하나님의 은혜야.”

김건철 장로와 해로하고 있는 부인 엄영선 권사는 김 장로 제일의 인복이다. 50년 넘게 살았지만 지금도 김 장로는 엄 권사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빛이 단번에 변한다. 화색이 돈다.

엄 권사 좋지, 너무 좋아. 동산유지 서울영업소 소장으로 있을 때 거래하던 약품회사 직 원이었어. 나랑 5살 차이거든. 일하면서 자연 히 알게 됐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게 됐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신앙심이 너무 좋은 거야. 그때는 미스 엄이었지. 너무 좋아. 그렇게 만나서 한 일 년 교제를 하고, 그러니까 연 애한 거지. 하하. 참 너무 사랑했어요. 피차 잘 만난 거야. 스물일곱 살에 만나 스물여덟 살 에 결혼했어요. 엄 권사 만나기 전엔 결혼 생각할 여력이 없었어. 너무 고생을 해서. 결혼 할 때가 됐다 했을 때 엄 권사를 만난 거야.”

아내 자랑은 이어졌다. 결혼한 뒤 그림을 그 리기 시작한 엄 권사의 그림실력은 수준급이다. 그림을 전공으로 한 며느리들의 것보다 훌륭하다. 엄 권사는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노래도 잘해 성악가인 딸은 엄마의 재능을 닮았다. 최근엔 일주일에 한 번씩 일본어를 배우러 다닌단다.

대단하지. 얼마나 열심히 한다고. 엄 권사 너무 좋아. 우리 집에 사람을 내가 전보다 더 사랑해.”

80대까지도 축구경기를 뛰었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김건철 장로는 여전히 귀도 밝고 눈도 도수 약한 돋보기를 가끔씩만 꺼내볼 뿐 건강하다. 치아도 발치한 하나 빼고 다 자연치이다. 하지만 김 장로의 진짜 건강은 신체적인 것뿐 아니라 마음, 건강한 내면에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사람의 말 한마디도 소중히 귀에 담으려는 그의 몸짓과 표정은 흔히 볼 수도, 쉽게 만들어낼 수도 없는 것이 리라. 김 장로의 남은 소망을 물었다.

나는 이제 살 만큼 살았어. 요즘 사람들이 백세백세 하지만 그건 정말 특별한 거고,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나 자신이 알아요. 곧 세상 떠날 거라고. 마지막을 잘 해야 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에베소 서 5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셨거든. 또 마태복음 5 13~16절에선 소금과 빛의 역할을 말씀하고 있다고. 그런 선한 영향을 발휘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나.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행복하게, 세상을 아름답게, 그 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 하나님의 일꾼이라 여기니까. 앞장서서 기도하며 힘써야 돼. 나는 내게 주어진 직업과 직책들에 애정을 갖고 감사하며 충성하려 했지.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헌신 봉사하는 거야.”

인터뷰가 끝나고 그 자리에서 김건철 장로 는 눈을 지그시 감고 찬송가부터 고향노래까지 서너 곡을 내리 불렀다. 그로부터 따뜻하고 밝은 공기가 번져가는 것만 같았다. 빛의 자녀로부터 빛의 열매가 흘러가고 있었다.

/한지은 기자

 

 

* 김건철 장로는?

김건철 장로는 1929223일생으로, 평안남도 강서 고창리 출신이다. 조부 김응록 장로는 105인 사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였다. 6·25한국전쟁 때 부친과 단 둘이 월남했다. 부친 김능백 목사는 충남 예산교회를 창립해 목회에 전념했고 남한에서 김건철 장로는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갖은 고생 끝에 사업을 시작하고 동숭교회를 섬기고 엄영선 권사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남한에서 삶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김건철 장로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번창한 사업 덕분에 교회는 물론 교계 연합사업 두루 곳곳에서 아낌없는 후원을 해왔다. 서울노회남선교회 60주년 기념교회와 남선교회전국연합회 70주년 기념교회를 세웠고, 수십 교회 건축을 도왔으며, 실로암안과병원 아이센터와 학술연구원 건축에도 헌신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도민회 회장을 비롯 평양축구단과 이북5도 축구연합회, 평안남도 서경회 장학회 등에서도 활동하며 후원했다.

아내 엄영선 권사와 슬하에 31녀를 두었고,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들을 그리워하며 지금도 통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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