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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세계적인, 그러나 가장 한국적이어서 감동적인 ‘이승만’
[[제1597호]  2018년 6월  2일]


이승만은 동서양이 융합된 인물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에 모두 정통했고 모두 최고였다. 한문(漢文)으로는 경지에 오른 붓글씨를 남겼고 영문(英文)으로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20대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통달했고 30대에는 프린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복을 입으면 선비였고 양복을 입으면 신사였다. 그는 동서 문화를 아우른, 20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군의 전형이었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이다. 세계가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세계 안에서 산다. 특히 한국은 여행, 연수, 유학, 이민, 무역 등으로 세계에 진출한 인구의 비율이 참으로 높다. 잦은 해외 경험에서 한국인들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느낀다. 서양 국가에서 살다보면, 내 안의 동양을 느낀다. 서양인들과는 통하지 않는데, 같은 동양인들 간에만 통하는 무엇이 있다. 외국 생활을 거쳐서 한국에 들어와 보면, 내 안에 어느새 자리 잡은 서양을 느낀다. 동양과 서양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동서양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시대, 양쪽에서 최고를 경험하고 최고를 취해서 쌓아올린 이승만의 생애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다.

둘째로 이승만은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캐릭터이다. 이승만이 세계적이었음은 세계적인 언론의 보도에서도 드러난다. 1904년에서 1965년까지 뉴욕타임즈에 이승만과 관련되어 실린 기사는 모두 1,256건이었다. 같은 시기에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의 지도자들보다도 압도적인 횟수였다. 다른 언론들의 기사까지 더하면, 이승만에 대한 세계 주요 언론의 보도는 수천 건을 넘어 수만 건에 이를 것이다. 동시에 이승만은 너무나 한국적이었다. 그의 한국적인 캐릭터는 국적에서도 나타난다. 주요 독립 운동가들은 다른 나라 국적을 가졌다. 김구는 중국, 서재필과 안창호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김일성은 소련군 장교로 아들 이름도 소련식으로 지었다.

이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나라가 망해서 없어져 버렸으니, 조선 국적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서 국적이 필요하기도 했다. 주요 지도자들이 유국적자(有國籍者)’였지만 이승만은 끝까지 무국적자(無國籍者)’였다.

그것은 이중의 고통이었다.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국제 여행을 가장 많이 했던 인물이 이승만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의 국적이 문제가 되었다. 여행 허가를 받을 때마다 비정규 여권을 받아야 했다. 보다 못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미국 시민권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승만은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통령인데, 어떻게 남의 나라 국적을 갖겠습니까?”

이승만 덕분에 여러 사람이 고생했다. 프란체스카는 국적이 없는 이승만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미국 입국 비자를 받느라고 고초를 겪었다. 미국 국무부의 시플리 여사는 비정규 여권을 발급하는 까다로운 업무에 지쳤다. 그녀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부탁했다. 남편을 설득해서 미국 시민권을 받게 하라고 했다.

아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이승만은 한결같이 대답했다. “한국이 독립할 것이니, 기다려 주시오.” 훗날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남편의 조국 독립에 대한 신념과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특유의 위엄과 민족적 자부심에 의해 언제나 압도 당하곤 했다... 이 당당한 무국적자인 남편과 내가 이로 인해 겪은 고초는 그분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이룰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국인이기를 고집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이승만의 일화는 끝이 없다. 평생의 동지 올리버를 만났을 때, 그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며, 거북선을 만들었고 가장 우수한 글자를 가진 민족임을 자랑했다. 미국 연설학회 회장을 지낸 인물을, 읍소나 간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당한 자부심과 해박한 지식에서 나오는 자랑으로 설득해서 동지로 삼았다.

서정주가 그의 전기를 썼을 때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존칭을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시켰다. 40년을 미국에서 산 이승만은 서정주에게 가장 변하지 않은 조선인이었다. 조갑제의 논평이 적절하다. “이승만의 거대한 생애는 조선인이 조선인의 혼을 잃지 않을 때 세계적인 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승만은 너무나 세계적이고 동시에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너무나 감동적인 캐릭터이다.

셋째로 이승만은 자주와 동맹의 절묘한 배합을 보여준다. 자주(自主)는 우리의 포기할 수 없는 이상(理想)이다. 동시에 동맹(同盟)은 우리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은 세계의 4대 강대국에게 둘러싸인 유일한 나라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강한 상대들이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자주를 이루어내기 위한 방법은 동맹일 수밖에 없다.

이승만은 동맹의 파트너로 미국을 선정했다.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우리의 역사는 그네들에게 짓밟힌 수난의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 오직 미국만이 한국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강대국이었다.

이승만은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미국을 끌여들였다. 그가 추구한 목표는 동맹이었고,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자주였다. 의존적이며 구걸하는 동맹이 아니라 자주적인 동맹을 맺어내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친미(親美)와 반미(反美)를 교차하는 그의 용미(用美)는 지미(知美)의 바탕위에서 가능했다.

이승만의 오랜 동료이며,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였던 로버트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의 전 생애가 친미(親美)로 일관했음은 저도 알고 박사님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박사님이 일생을 통해서 견지해 온, 한국 독립 투쟁이 반드시 미국을 통하여 미국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과 또한 소련이 침공을 막는 데에도 미국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저와 박사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을 이루어나가기 위하여 특정한 미국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은 지금까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친미 노선이었으나, 친미의 형태는 자주였다. 그는 한국을 위해서 특정한 미국 정책에 끊임없이 반기를 들었다. ‘친미 반공노선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원치 않았다. 이에 이승만은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실력 행사로 미국을 압박하여 동맹을 맺어냈다. 싫다는데 억지로 강요했으니, 일종의 깡패 짓이다. 그러나 외교의 천재 이승만은 그것이 옳은 길이며 모두를 살게 하는 길이며, 결국에는 미국의 승리와 영광이 될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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