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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최초 여장로 노회장 이경희 장로
[[제1663호]  2019년 11월  2일]

복음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몸 세우기 위해 응원하고 보듬는 노회장 되고파

상도중앙교회 창립한 시부 고() 강수영 장로부노회장 뒤이어

- 교단 최초 여장로 노회장 이경희 장로(서울관악노회상도중앙교회)

교단 역사상 최초로 여장로 노회장이 탄생했다. 여목사 노회장이 선출된 적은 있다. 그것도 큰 이변이었다. 이번엔 여장로다. ‘남성’ ‘목사가 주류인 노회에서 여성’ ‘장로가 노회장이 된 것은 교단, 아니 한국 교회 역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1022일 시흥교회에서 열린 제47회 관악노회에서는 상도중앙교회 이경희 장로가 노회장에 선출됐다. 이 장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신의 의지는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에 서겠다고 기도했다. 노회가 열린 이틀 뒤 상도중앙교회에서 이 장로를 만났다.

제가 노회에서 소견을 말씀드리면서, 노회나 총회에서 여성이라서 좋은 점은 화장실 사용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어요. 수십, 수백, 수천 명이 모인 곳에서 여성은 1~2%에 불과하니(104회 총회(예장통합)에서 전체 1500명 총대 중 여성총대는 26명이었다) 화장실이 붐비지 않잖아요. 편하긴 하지만 서글픈 현실이지요. 그래도 우리 관악노회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덜한 편이어서 제가 노회장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이번에 노회에서 여성노회장을 세우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여성이라서 세우는 게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인정하고 남녀가 함께 협력하고 동역하는 노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서는 목회는 물론 당회 및 노회와 총회, 교회연합기관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여성들의 활동에 제약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경희 장로가 느끼는 현실적 한계와 그 대안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 장로는 교회 밖에선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여성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데 교회는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이유로 교육을 꼽았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는 구절을 언급하며 여성들에게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거나 정작 여성 스스로 뒤로 물러나려 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한국교회 안에 많은 거 같아요. 몇 년 전 총회에서 총대 20명 이상 파송하는 노회는 여목사·여장로 1인씩 총대로 파송해 달라는 청원안의 가부를 물었을 때, 제 옆에 앉아 있던 많은 남성총대들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니오를 외치는 것을 지켜보며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없어서 남성에 견주어 부족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지 (남성과) 같이 설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 현 상황에서는 (주도권을 갖고 있는) 남성들이 양보하고 배려해서 여성 리더십을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성, 여성 모두 인식을 개선하고 그 방법을 함께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교육도 필요하고요.”

이경희 장로가 이번에 노회장이 된 사건(?)이 더욱 특별한 까닭은 그가 여장로일 뿐만 아니라 상도중앙교회 원로장로인 고() 강수영 장로의 자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 강수영 장로는 서울관악노회가 분립되기 전 서울남노회에서 부노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시부는 부노회장으로, 며느리는 노회장으로 노회를 섬길 수 있게 된 것도 교단 역사 이래 처음이지 않을까.

저희 시외삼촌이 상도중앙교회를 개척하시면서 시부모님도 협력하셨던 거예요. 시부모님은 교회를 세우는 데 정말 열심히 헌신하셨어요. 지금도 저희 ()아버지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또 저희 ()어머니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는지 그 모습들을 떠올리면 무척 존경스럽고 저는 감히 흉내도 낼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하루도 집에서 편히 주무신 적이 없으셨어요. 그땐 교회가 춥기도 했는데 저녁을 드시고 한숨 주무시고 일어나셔서 9시쯤 되면 담요를 둘둘 매고 교회에 가셔서 밤새 철야기도 하시고 새벽기도 드리고 집에 돌아오시곤 하셨거든요.”

교회 선임 장로인 시아버지와 기도대장 권사 시어머니가 계신 집에는 하루도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다. 새해가 되면 교회에서 스무 팀 정도는 다녀가야 1월이 지나갔다. 분가한 뒤에는 또 청년부며 교육부, 남선교회, 성가대 등 활동을 했던 남편과 이 장로를 찾는 손님들로 늘 집은 북적였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드나들었으면, 이 장로네 집을 안 가 본 사람은 상도중앙교회 교인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었다.

당시 저희 집이 주택이었는데 집은 작았지만 마당이 넓었어요. 마당에 늘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예배드리고 그랬지요. 그때 남편이 청년부를 맡고 있었는데 청년들이 노상 저희 집에 와서 먹고 자고 그랬어요. 저희 막내아이가 돌 지났을 즈음이었는데 아이들이 항상 이모, 삼촌 부르며 쫓아다니고, 청년들은 편하게 냉장고에서 먹을 것들을 찾아먹고 그랬어요.(웃음) 그땐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도 많았거든요. 그렇게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다 보니 저희 아이들이 정말 친삼촌인 줄 알고, 우리 교회에 친조카가 있는 청년이 있었는데, 저희 아이와 그 조카가 서로 우리 삼촌이라면서 싸운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이제는 다들 50대가 되었는데 지금도 만나면 참 즐겁고 좋은 인연이에요.”

시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이경희 장로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사랑을 무척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청년 시절 새문안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이경희 장로와 남편 강병남 장로를 중매했던 사람은 당시 새문안교회 대학부를 맡고 있던 여전도사. 다름 아닌 강병남 장로의 큰누님의 시누였다.

이화여중과 이화여고를 다니면서 일찍이 정동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이경희 장로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71학번)을 졸업하면서 새문안교회에서 고() 강신명 목사에게 세례 받았다. 세례를 받을 기회가 앞서 학교와 교회에서도 여러 번 있었지만 무엇이든 성실하고 완벽하게 해야 하는 성격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75928일 세례를 받았는데, 이 장로는 그때 고 강신명 목사와 나눈 세례문답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했다.

목사님께서 제게, 결혼하려는 남자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면 어떡할 거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결혼해서 믿도록 하겠다고 답했더니 호통을 치시면서 꼭 믿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아마도 목사님께서 저를 꿰뚫어 보셨던 것 같아요. 이후 믿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겠다고 기도하곤 했는데, 남편을 만나게 됐지요. 처음 만난 날 남편이 긴장한 탓인지 커피를 마시면서 설탕을 조금 흘렸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나중에 집에 가서 ()부모님께서 밥을 해주시고는 누룽지를 박박 긁어서 주셨는데 그것도 참 좋더라고요. 남편도 시부모님도 참 꾸밈이 없으시고 소탈하신 분들이세요.”

심방을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며느리 칭찬밖에 하지 않으셨던 지혜롭고 현명하신 시부모님과 더불어 남편은 지금까지 항상 이경희 장로의 편에 서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 장로가 장로로 피택되던 날, 당회에서는 예상치 못한 여장로 피택에 당황해했다. 부부가 함께 장로로서 당회원이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편은 과감하게 휴무를 선택하며 아내가 당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6개월 후 당회원들은 부부가 함께 당회원으로 활동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편 강병남 장로를 다시 당회에 들어오도록 했다.

남편은 정말 항상 제 편이 되어줘요. 제가 활동하는 것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줬어요. 노회 일도 감사를 끝으로 그만하고 싶었는데, 제가 부노회장에 추천이 되었을 때 남편이 당신이 노회 일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해주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이번에도 노회장이 되어 최선을 다해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말해주었고요. 남편 말이, ‘나는 평생 강수영 장로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에 어디 가면 이경희 장로 남편이라는 소릴 듣는다.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이번에 노회장이 되어서, 노회장 이경희 장로 남편이라는 말을 듣게 해달라라고 말해줬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사상 최초 여장로 노회장이 됐지만 사실 이경희 장로는 자기주장이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성격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 와 국어시간에 책을 읽는데 그의 경상도 억양에 친구들이 웃었고 어린 마음에 숨고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떠오른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집단상담자격과정을 교육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을 고르라고 하는데 제가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을 골랐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때부터 조금이라도 싸우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맞서 싸우지 못했고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것이 무척 괴로웠어요. 친정아버지께선 생전 항상 손해 보고 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늘 저에게 남아 있었는데, 돌아보면 한 번도 손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어떤 분들은 이런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바보 같다고 말씀하기도 하시는데, 저는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나님께서) 걸음을 걷게 하시는 거지 내 맘대로 옮겨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맡은 일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성격이다. 이 장로는 어떤 노회장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면서 서울관악노회 창립 목적을 찾아보았다. ‘복음을 수호하고 전파하는 일에 모든 사업을 실행한다. 속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성장 발전하도록 돕는다라는 기록을 보았다.

노회 목적대로 선교사업과 재정사용이 잘 되고 있는지 검토하고, 여성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잘 살펴서 격려하고 응원하고 보듬는 그런 노회장이 되고 싶어요. 목사님들은 목회도 하셔야 하고 많은 일들을 맡고 계셔서 바쁘시지만 저는 이제 노회 일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요. 노회에 속한 아주 작은 교회부터 돌아보고 싶어요. 그렇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일을 감당해야 될 것 같아요.”

이경희 장로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면서 노회장 역할을 감당해 내겠다고 했다. 하늘의 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섬기는 기쁨이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경희 장로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앞으로 또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한국교회와 독자들도 응원하며 기대한다.

/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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