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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연기인생, 70년 천국인생, 30년 사역인생 걸어온 정영숙 권사
[[제1687호]  2020년 5월  16일]

말씀으로 하나님 알고 기도로 믿음의 여정 걷게 됐어요

배우 정영숙 권사 (여의도 침례교회)


우리 뇌리에 박힌 여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배우 정영숙 권사(여의도침례교회)를 사랑의쌀나누기운동위원회의 토요 조찬기도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예상했던 여배우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곧게 편 허리, 정갈한 차림새, 정돈된 은발이 주는 연륜의 아름다움까지. 그러나 편견은 기도회 후 열린 조찬 자리에서 깨졌다.

정영숙 권사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회에 참석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사를 나르며 섬기기 시작했다. 몸에 밴 듯 익숙했고 어색함이 없는 동작이었다. 따뜻한 미소로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신앙이 있는 여배우를 만나러 왔다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다.

 

한경직 목사와 함께한 사랑의쌀나누기운동위원회

요즘요? 작품이 끝나고 가정을 지키면서 주부로서의 일에 몰두해 있어요. 살림을 하다보면 시간이 잘 가고 재미있어요.두 자녀도 결혼해서 새 가정을 꾸려 나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걱정이 없죠.”

50여 년 동안 배우의 길을 걸어온 정영숙 권사의 근황을 물으니, 모처럼 찾아온 휴식기를 평화롭게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배우로서 휴식기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 휴식기였던 적은 없다. 그녀는 지난 2, 사랑의쌀나누기운동위원회의 신임위원장에 선임됐다. 사랑의쌀나누기운동위원회는 30년 전,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된 풍년의 축복 속에 남게 된 쌀을 국내의 가난한 이웃과 북한 동포,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구촌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 세운 기관이다. 정영숙 권사는 1990, 한경직 목사를 필두로 위원회가 출범할 때부터 함께 걸어왔다.

사실 함께 하시는 회원 분들이 사회적, 영적으로 저보다 더 영향력이 있으신 분들이에요. 전 그저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받았을 뿐입니다. 다만 그 시절 한경직 목사님의 애틋했던 모습이 기억이 나요. 연로하셨던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실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위원장에 선임된 소감을 물으니, 정 권사는 아련한 눈으로 한경직 목사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 사랑과 뜻을 이어받아,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한다. 교회에서 교인들의 경조사에 보내는 화환을 쌀 화환으로 대신하자고 홍보하는 것이다. 한번 쓰고 버리는 꽃 화환 대신 쌀을 화환으로 만들어 기부하는 쌀 화환 문화를 정착시키고자한다. 이 같은 제안을 하기 위해 정영숙 권사는 방송 매체 관계자들을 만나 뜻을 전하고 있다.


말씀으로 만난 하나님

사랑의쌀나누기운동위원회 관계자는 정영숙 권사가 30년간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조찬기도회에 꾸준히 참석해 왔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녀가 50여 년간 배우로서 한 길을 걸어왔듯이,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꾸준하고 성실했다는 사실은 함께한 동역자들이 인정한다. 1989, 연예계 복음화를 위해 연기자 기독신우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 중이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여성들의 모임인 에스더 기도모임에도 30년 이상 참석하고 있다.

그저 부끄러워요. 제가 기도를 하면 얼마나 하고, 말씀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다만 제 삶에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사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 교회만 오갔어요. 물론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넘쳤어요. 교회에서 했던 성가대 활동과 크리스마스 연극, 율동 등이 배우라는 직업을 택하고 지속할 수 있는 자산이 됐지요.”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참석하게 된 성경암송 모임에서 정 권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히브리서 412절 말씀을 힘주어 되뇌었다.

말씀을 암송하니 그 말씀이 정말 제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말씀이 차니까 주님을 알게 됐고, 무조건 하나님이 먼저인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죠. 말씀 앞에 순종하기 위해 주일학교 교사로도 자원했습니다. 교사를 하기 위해서는 주일을 지켜야 했기에 믿음의 싸움을 해나갈 수 있었어요.”

정영숙 권사는 72세까지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로 섬겼다.

 

꾸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은혜

정영숙 권사는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원래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꿈이 없었지만, 대학 4학년 때 가세가 기울면서 돈을 벌기 위해 탤런트가 됐다. 그러나 그녀가 발을 딛게 된 연예계는 결코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 정 권사는 1989년에 연예계 복음화를 위해 연기자 기독신우회를 만들었다.

부산 직장선교회에서 간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기자들에게도 신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일주일간 기도하고 임동신, 한인수 등 크리스천 연예인들에게 연락해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께 신우회 활동을 도와달라고 부탁드리고 이재철 목사님께 창세기 성경공부를 이끌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녀는 꾸준히 신우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연예계의 영적인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연기자 기독신우회를 쓰실 거라는 생각으로 고민하고 기도하며 헌신하고 있다.

배우로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요. 여배우에겐 특히 주연에서 조연으로 내려가는 시기가 어려워요. 어느 날 대본을 받았는데 제 배역이 주인공의 엄마 역할이더라고요. 관둘까 말까, 다른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됐죠. 그때 누군가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길 사모하라고 조언해 주었어요. 3일간 주님 앞에 제게 말

씀을 달라고 떼를 쓰며 기도했죠.”

정 권사는 잠언 221절부터 4절의 말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시는 음성이라는 것이 깨달아져 무릎을 쳤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하나님의 그 말씀에 맞아요! 주님. 그렇죠!’ 경탄하게 됐어요. 재물과 은금만을 보고 택하는 길은 숨어 피해야 할 재앙의 길이었어요. 딱 제 말씀이었죠.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은혜와 기쁨으로 넘기고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틀을 내려놓고 자유 할 수 있었어요.”

 

기도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정영숙 권사에게 말씀의 꼴을 먹이신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훈련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셨다. 말씀암송 훈련이 끝나갈 때 쯤, 그녀는 이제는 고인이 된 영락교회 민병운 권사를 만났다.

국내 여성 외과의사 1호인 민병운 권사님은 풍채도 배포도 크신 여장부셨어요. 수술로 치유할 수 없었던 환자의 병을 놓고 기도했을 때, 회복됨을 보고 기도자가 되신 분이셨어요. 산에 올라가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는데, 제게도 함께 가자고 하셨죠. 그때는 배우로서 일하며 드라마 대사를 외울 일도 많았는데, 기도하자고 하실 때 대사를 외워야 해 거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기도하러 가지 않고 대사를 외우려 해도 꼭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 기도를 먼저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구나싶었죠.”

그렇게 시작한 기도생활은 그녀의 지경을 더욱 넓혀갔다. 88서울올림픽을 맞아 열린 민족성회에서 권사들이 기도와 섬김의 모임을 가졌고, 성회가 끝나도 그 모임을 이어가라는 CCC 김준곤 목사의 권면에 따라 이들은 에스더 기도모임을 갖게 됐다. 한 달에 한 번 종교교회에서 예배드리던 도중, 북한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임진각으로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씩 임진각 철책선을 붙들고 기도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통일촌 내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셔서 북한과 좀 더 가까운 지역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거기서 10여 명 정도는 판문점교회로 들어오라는 허가가 떨어졌어요. 최전방에서 기도의 탑을 쌓았죠.”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어느새 소떼가 북한으로 넘어가고 남북교류의 길이 열렸단다. 1997년도에 남한방문단이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할 때 정영숙 권사도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통일을 위해 기도했던기도자에게 북한 땅을 직접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정영숙 권사에게는 무엇보다 뜻깊은 일이었다. 또 이 일을 계기로 남북통일을 위해 더 구체적이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었고 북을 향한 사랑과 봉사도 실천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꾸준히 가깝게 지내는 비결은말씀과 기도뿐이라고 정영숙 권사는 고백한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잠언 817말씀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정 권사의 50여년의 배우생활도 물론 값지지만, 평생을 하나님과 교제해 온 그녀에게는 천국생활을 해 온 자의 아름다움이 짙게 묻어 있어 여운이 남았다.

/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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