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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아!8월29일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 
[[제호]  2017년 8월  22일]

1910년 경술년(庚戌年) 829일은 국치일이다.

한일합방이란 미명 하에 사리사영을 위하여 우리나라 대한제국 국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조약을 맺게 한 일곱 매국 7(七賊) 당년의 집권자,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 내부대신 임선준(任善準), 범부대신 조중응(趙重應), 농상공부대신 송병준(宋秉畯), 학부대신 이재곤(李縡昆), 군부대신 이병무(李秉武), 탁지부대신 고영희(高永喜).

우리민족을 자유인의 광명으로부터 노예민의 암흑으로 일락천장(一樂天仗)하였던 민욕(民辱)의 날이다. 오천년 역사의 긍지와 자존심이 유린된 문화민족의 천권(天權)이 박탈된 그날이다. 일본의 총검 앞에 뼈와 살과 피와 땀의 전부를 바치기 시작한 통한(痛恨)의 그날이 107년 전 1910년 경술년 829일이다.

우리 선인들은 이날을 가리켜 방성대곡(放聲大哭)’이라 하였거니와 이날을 비롯해 일 년, 365일의 시일은 36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 동안에 우리는 과연 어찌되었는가? 탐욕과 착취를 위하여 바친 허다한 제물과 희생을 여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대욕에 대곡하였고 학정에 대곡하였고 참고에 대곡하여 유성 무성의 곡성이 골수에 사무쳤다 하는 일언으로 표현이 족할 것이다.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우리는 우리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내선일체(內鮮一體)란 미명하에 창씨개명(創氏改名) 정책으로 우리의 민권이 완전히 박탈, 유린되었고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당하여 우리의 종교의 장유가 유린되었다.

이 날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있었던가? 우리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 날이 쓰인 원유(原由)가 어디에 있었던가? 관점에 따라서는 시야가 자별하리라. 각도에 따라서는 결론이 각별하리라. 사리사영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국권을 팔아먹은 이시의 집권자 7적의 죄악도 그것이라 할 것이요. 동가이곡(童歌理曲)인 합방대세론으로 민의를 오도하고 팔아먹은 당년의 악질 정당인 일진회(一進會) 무리들의 죄악도 그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또 따지고 보면 우리 전체가 못났던 것이다. 매국, 매적 무리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우리 전체의 책임이다. 전체적으로 자아의 확립이 주축을 이루지 못하였고 자력의 강력한 국력이 없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사대주의와 의타주의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한말 당년의 갖은 비극과 최후의 참변은 실상이 이와 같은 원연이 오래고 깊은 외력 의존주의와 사대주의의 결과를 보게 되었다. 이 얼마나 끔찍한 829 경술국치의 결말이었던가. 무시무시한 산 교훈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날을 말살하자. 치욕의 이 날을 완전히 말살하자.

민족정기의 발양을 위하여 자손만대의 무궁한 금후의 행복을 위하여 자아광복의 토대위에 우리의 명일의 희망에 살고 힘차게 진군하는 우리는 829 경술국치일을 이렇게 맞이함으로 우리의 심경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결의를 굳세게 하여 다시는 외세에 유린당하는 못난 상처가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우리의 국력을 최대한으로 힘써 키워나가 튼튼한 대한민국으로 우리의 결의를 다짐하자. 대한민국 만세!

우리민족의 신원을 하나님께서 하감하시고 세계만방에 양심을 일깨워 우방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으로 하여금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를 응징, 패망케 함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어 해방되었고 1945815일은 우리의 질고가 환희의 기쁜 날인 광복의 날이다. 우리는 19488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어 UN의 승인을 얻어 국제무대의 일원이 되었다. 이는 오로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섭리다. 건국 이후 우리는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1950625일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의 와중에 우리 애국 청년 장병들의 수많은 희생과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과 말할 수 없는 참화로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그야말로 절망의 어두운 현실에서 UN의 참전으로 공산침략군을 무찌르고 격퇴함으로 국토가 회복되었다. 우리의 애국 선인들은 절망에서 일어나 피와 땀과 열과 성으로 힘써 건설하고 노력하여 일으킨 보람이 있어 광복 72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과 부흥, 발전할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국가로 문명국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G20국가대열에 합류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앞으로 더욱 전진하며 성장, 발전, 부흥할 것이며 튼튼한 국력과 안보와 국민의 대동단결로 힘을 합하여 우리의 숙원인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통일 국가로의 꿈을 이루고 이 책무를 다하여 완수해 자손만대에 물려줄 것이며 민의를 바른길로 이끌어 나아가야 하겠다.

끝으로 우리는 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19611월 취임연설에서 지적한 국민의 바른 자세를 인용하여 광복 72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바른 애국심과 자세와 척도로 제공하고자한다.

<그리하여 우리 애국동포들이여,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묻지 말아다오. 그보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다오.>

   

한일 병탄 조약시 전권위임장. 관례와는 다르게 순종의 이름()이 서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은 순종의 친필이 아니다.

* 을사늑약(乙巳勒約)과 경술국치(庚戌國恥)

 

19051117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해 체결한 조약. 공식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다. 명목상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되어 을사보호조약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보호국이라는 지위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화를 미화하는 뜻이라 하여 을사조약이라는 명칭이 흔히 사용된다. 모두 5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을사5조약이라고도 하며 조약 체결과정의 강압성 때문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도 부른다.

일본왕의 특별대사 자격으로 서울에 온 일본 추밀원장 이토 히로부미는 위협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약을 승인받았다.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5명이 조약 체결에 찬성한 대신들이다. 이들을 을사5(乙巳五賊)이라 한다.

한국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統監府)와 이사청(理事廳)을 두어 내정(內政)을 장악하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조약이 채결됨에 따라 대한제국은 맹목상으로는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되었다. 을사조약을 기초로 개항장과 13개 주요 도시에 이사청이 11개 도시에 지청(支廳)을 설치하여 일본 식민지배의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통감부는 병력 동원권과 시정 감독권 등을 보유한 최고 권력기관으로 군림하였다.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민족적 저항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자결하여 국민을 각성시키고자 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의병(義兵)들이 일어났다. 정부 차원에서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는 등 을사조약이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무효임을 알리는 외교활동도 전개되었다.

 

*을사조약의 무효성

 

당시 국내외적으로 공인된 나라들 간의 조약 체결 원칙과 규범에 의하면 조약 당사자의 사전 승인과 국새 날인이 강압이 아닌 국가 간의 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19세기에 국제적으로 공인된 만국공법 제45장과 제408장에는 조약이 반드시 국왕의 승인을 얻어야 공인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국가가 비준하지 않으면 그 조약을 무효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을사조약은 합법성과 적법성도 없는 불법조약이며 일본이 일방적으로 날조하여 공포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공인된 조약이 아니다.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李儁이상설(李相离이위종(李瑋鍾)을 비밀리에 특사로 파견하여 일본이 통감정치를 위해 국제법까지 조작하고 무시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한일합병(韓日合倂)

 

일제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의 경술국치를 전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경술국치, 국권피탈, 일제강점, 일제병탄 등으로도 불리운다.

일제는 19105월 육군대신 데라우치를 제3대 통감으로 임명하여 한국식민지화를 단행하였다.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할 시기만을 노리던 데라우치 통감은 816일 비밀리에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할 것을 독촉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달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암흑의 일제강점기 36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일제는 한국민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발표를 뒤로 미루었다. 조약체결을 숨긴 채 정치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829일에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讓國)의 조칙을 내리게 하였다.

1910829일 순종이 마침내 한일합병 조약을 공포하니 이로써 대한제국이 완전히 일본에게 탈취당했다. 일제는 1910년에 한국을 병탄(倂呑)하면서 그 행위를 미화하기 위해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말을 썼는데, 여기서 합방이란 양국이 합의하여 한 나라를 구성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27511년 만에 그리고 대한제국이 성립된 지 14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이 때부터 일제는 통감부를 폐지하고 보다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세워 한국 통치의 총본산으로 삼았고, 이로부터 시작되는 한반도 지배의 일관성 정책은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한 탄압 영구 예속화를 위한 고유성 일상 및 우민화(愚民化)와 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이었다. 일제강점기 36년은 무단통치, 헌병 경찰 통치, 문화정치 시기였고 민족분열 통치, 병참기지화 및 전시동원 정책, 민족문화 말살 및 인적 물적 자원 약탈 등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우리에게 주었다.

/김재훈 장로(영락교회 은퇴·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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