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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164) - 한석진 목사 ④
[[제1600호]  2018년 6월  30일]


韓錫晉 牧師, 1868-1939

정열적인 복음 전도자

교인 중에는 목수와 석수장이가 자기 기술과 시간을 바쳐서 일하였고 어떤 교인은 자기가 직접 가서 좋은 목재를 구해왔다. 교인들의 건축헌금은 3년에 나누어 내게 했다. 첫 교인들의 헌금을 작정했는데 3천 원의 연보가 거두어졌다. 교인들은 많은 헌금에 스스로 놀라워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트리니티 교회에서 신축될 교회에 풍금을 준비하기 위하여 모금하고 있는 데 250여 명의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10센트씩을 내서 보내주었다. 교회 건축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 샌프란시스코의 몰톤(H. D. Morton) 씨와 가렛(S. T. Garrett) 여사가 큰 종과 종루를 기증하였다. 주님 오실 때까지 평양성과 근교에까지 들리기를 희망했다. 새벽기도회 시간을 알리며 주일 예배 시작을 알리는 초종과 재종이 울렸다. 한 번 울리면 30리까지 퍼졌다. 그러나 장대현교회의 종은 왜정 말기에 소위공출’로 빼앗겨 영영 자취를 감추었다.

한석진 조사가 자기 손으로 창설한 널다리골교회와 장차 발전하여 대교회가 될 장대현교회를 자기의 전도를 받은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농촌인 소 우물에 나가서 개척하였다. ‘이제는 새로운 일꾼이 많이 생겼다. 이 교회는 새 일꾼에게 맡기고 나는 다시 새 교회를 개척한다. 개척 사업이 내게는 적당한 일이다’라고 늘 다짐하였으므로 널다리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본래 독립심과 자주 정신이 강한 그는 당시에 교회를 창설하고 지도하는 일에 선교사들의 주관으로 운영되어 온데 대하여 그는 은근히 불만을 느꼈다. 또한 농촌과 무산자들도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본의 침략의 마수가 점점 가까워오는 것을 알고 농촌에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깨우치고 교육시키고 예수를 믿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농촌에 교회를 세우고 교육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석진 조사는 1897년 가을부터 소 우물에 힘을 기울였다. 1903년 이미 전도하여 터를 닦아 놓은 장천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다. 예배당을 지은 후에 신의학교를 설립하였고 뒤이어 구동학교와 명의여학교와 신애여학교까지 세워서 근방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소학교 교육을 시작하니 이것이 농촌교회에서 초등교육기관을 설립하게 된 시초며 특히 여학교의 효시라고 하겠다.

이때 채필근 목사의 부친 채응빈 선생과 평양 근방에서 이름이 높던 학자로 예수교인이 된 전군보 선생을 신의학교와 신애여학교에 청빙하였다. 근방의 청년들을 전도하여 기독교인이 되게 했으며 애국정신과 독립사상을 불어넣고 교육열을 고취하는 강론과 토론회를 자주 열므로 남녀 청년들이 많이 모여 들어 한 조사와 전 선생에게 신앙과 애국정신을 지도받았다. 한 조사는 10년 동안 평양 동부 변두리 지역에서 사역했으며 그곳에 일곱 교회를 세웠고, 300여 명이 모이는 소우물교회에서 장로로 봉직하였다.

1904년 마펫 목사는 이길함, 웰스 의사와 평양 공의회를 조직하고 신학 반을 시작하였다. 1900년에 서울에서 언더우드 목사가 사랑방 신학반 모임을 시작하였다. 그것을 인정하여 1904년에 학생들을 추천하여 공부하게 되었으며 그 해에 평양공의회는 마펫 목사를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장으로 추천하여 초대 교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2년 기한이었으나 그 후 계속해서 교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 신학교를 훌륭하게 육성하였다.

1907년에는 75명의 학생이 1. 2. 3. 5학년에 나뉘어서 공부하였고 동년 6 20일 한석진은 서경조, 양전백, 길선주, 방기창, 이기풍, 송인서 등과 함께 평양 신학교 제1회로 졸업했다. 1907 9 17일 조선예수교 장로회 제1회 독 노회에서 한석진은 함께 졸업한 6명과 더불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국 장로교 역사상 제일 처음 안수식을 갖게 되었고, 한석진 조사는 첫번째 7명의 목사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졸업생 일곱 명 중에서 제일 먼저 예수 믿고 신앙생활한 사람은 한석진 목사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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