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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167) - 한석진 목사 ⑦
[[제1605호]  2018년 8월  4일]


韓錫晉 牧師, 1868-1939

정열적인 복음 전도자

교회당 건축을 결정했다. 모금해서 대지를 사고 나니 한 목사가 설계한 벽돌집 예배당 건축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 때 정동에 중국인 건축업자인 모문서(慕文序)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교섭하여 우선 약간의 전도금만 내고 잔금은 준공 후에 지불할 터이니 예배당 건축을 요청했다. 1만원이 되는 거액의 건축비를 외상으로 지은 것이다. 하루는 박승봉 장로와 외무대신이었던 박제순을 찾아갔다. 그는 박승봉 장로와 가까운 친척이었다. 국운이 기우는 이때 민족과 국가를 건질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길밖에 없으니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기부할 것을 간곡히 청하였다. 이에 그는 두말도 없이 8천원을 연보하였다. 이로써 모든 빚을 청산했다. 그리하여 벽돌 2층의 예배당을 지어 아래층은 주일학교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 후 벽돌 2층의 목사관도 건축하였다. 개화주의자인 외부대신을 지낸 유길준도 이 일이 있은 후에 안동교회에 출석했다. 한석진 목사는 안동교회에서 뜻있는 젊은이들을 여러 명 양육했다. 그들 중 윤상훈, 금은호, 윤상찬, 금우현, 박칠양, 금인식, 리정섭, 정경덕, 리수삼 등이다.

한석진 목사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열심히 있었다. 그의 진취적이고 뛰어난 지도력에 감화를 받은 많은 청년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고, 훗날 한국교회와 사회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한 석진 목사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선비 오건영(吳建泳)과 이정로(李鼎魯)를 박승봉 장로의 사랑에 식객으로 머물게 하면서 그들을 신앙적으로 지도하였다. 오건영은 1913년 경충노회의 추천을 얻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면서 목사가 되었다. 한편 한 석진 목사는 동경 신학사 교장인 우에무라와 교섭하여 1917년 이정로를 보내서 1922년에 졸업하게 하였다. 한석진 목사는 안동교회를 6 4개월 목회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으나 안동교회를 세우고 건축하고 혁신적인 개혁으로 북촌의 양반들을 역사의 진취적인 인물들로 성장시켰다.

한석진 목사는 안동교회를 목회하는 동안에 각 지방의 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였다. 1916년 정월에 마산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했다. 한 목사의 사경회에서 많은 은혜를 받은 후 한 목사를 청빙하였다. 마산교회에 부임하니 창신학교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한 목사는 이만한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남의 학교를 빌려 사용한다는 것은 직원과 교우들의 무성의라고 했다. 조속히 예배당을 건축할 것을 권하였다. 한 목사는 미약한 마산교회를 1919 2월 사임하기까지 3년 동안 뜨거운 신앙과 열성으로 교회 발전에 온갖 힘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무악 산기슭에서 석재를 실어다가 석조 예배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일부 완성하므로 창신 학교로부터 옮겨 예배를 드리니 교인들의 기쁨이 매우 컸다. 준공은 못하고 떠나게 되었으나 문창교회 석조 예배당은 한 목사의 설계이며 노력의 결정이었다. 한 목사는 마산교회 재임 중인 1917년에 장로회 총회장에 피선되었다.

한석진 목사가 마산교회에 부임한지 1년 반이 지난 1917 10 21일 이 일심 사모가 3 3녀를 남겨두고 별세하였다. 그리고 1918년 늦은 봄에 친구인 금천일 목사의 주선으로 평원군 출신인 오선신과 재혼했다. 1919년 초 마산교회를 사퇴하고 고향인 의주에서 가까운 백마로 이사했다. 마산교회를 사임할 때 후임자로 평양에서 한 목사에게 전도받고 후일 목사가 된 박정찬 목사를 천거하였다. 한석진 목사는 한 동안 모든 시름을 잊고 소원이던 농촌생활을 하며 심신을 휴양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때 1919년 봄 3.1운동이 일어났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이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당하게 되었다. 신의주교회 금병(금관근 목사의 조카)목사도 수감되었다. 한석진 목사가 백마에 은거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청빙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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