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기고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죽을 고비가 참 많았다. 위험 중에서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세 가지만 피력하고 싶다.
전쟁이 일어난 그해 가을이었다. 나는 친척집에서 묵은 솜을 솜틀에 집어넣고 열심히 발로 밟아 그것이 나오면 바구니에 주워 담는 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튼 솜에 닭이 와서 똥을 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안 고모는 다짜고짜 딱딱한 목침을 내게 던지며 “이것 맞고 꼬꾸라져 죽어라”고 했다.
옛날 시골에서는 부드러운 베개 대신 나무토막으로 만든 딱딱한 베개를 베고 잤다. 그것을 목침이라 한다. 그 목침은 나의 코와 입술에 정통으로 맞았다. 나는 코피를 쏟고 이가 부러지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코피를 얼마나 쏟았던지 마치 수돗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침 지나가던 아저씨가 이 딱한 모습을 보고 잠깐 쉬어 가겠다며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피 흘리는 나의 코를 솜으로 막아 주고 고개를 뒤로 젖혀 주며 등을 두드려 주셨다. 목침을 던진 순간을 보지 못한 아저씨는 “어떡하다 이렇게 됐니?”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고모는 “이 아이가 앞을 못 보기 때문에 자기가 혼자 나오다 기둥에 부딪혔답니다”라고 거짓말하며 둘러댔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얼마 후 코피는 멎었지만 문제는 부러진 이와 터진 입술이었다. 물이 들어가거나 간이 든 음식물이라도 닿으면 너무나도 쓰렸다. 그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만일 그 목침을 맞아 이가 뿌리까지 모두 부러졌다면 수술을 받았든지 아니면 곪아 터져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중간이 부러져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때 부러진 앞니는 지금까지 아무리 닦고 다른 치아로 바꿔 끼워도 색깔이 누렇게 변해 버려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듯 나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매를 맞아 고막이 터졌을 때도 하나님이 치료해 주셨고 코뼈가 부러졌을 때도 하나님께서 다시 바로 세워 주셨다. 유달리 나의 코가 커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한 번의 위험한 고비가 있었다. 뉴욕에 한민교회와 한성교회를 개척하신 나의 선배 김권석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나와 친밀한 사이였기 때문에 뉴욕에 가면 그 목사님 댁에서 가족과 같이 머무르곤 했다. 나는 김 목사님의 세 아이들에게 빵과 햄버거를 사 주었다.
그러던 중 그 목사님은 골수암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급기야 다리를 자르기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다리를 절단했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싶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미국 LA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LA에 도착 후 어느 날 아침 나는 그 목사님께 위로의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께서는 “김 목사! 장애인끼리 모여 며칠간 같이 지냅시다. 그곳 계획을 취소하고 뉴욕으로 빨리 오십시오” 하시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나와 같은 경주 김씨였고 평소에도 각별한 사랑을 주셨던 분이기에 나는 곧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런데 이틀 후 한국 총회로부터 “빨리 귀국해 총회에 나와 보고할 내용을 제출하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독촉을 받은 나는 하는 수 없이 김권석 목사님께 다시 전화를 걸어 사정 얘기를 하며 11월 추수감사절에 꼭 한 번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지 두 주 만에 나는 소련 사할린에서 대한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바로 그 비행기는 뉴욕에서 돌아올 때 타려고 예약했던 노스웨스트 항공기였다. 만일 그때 김 목사님을 뵈러 뉴욕에 갔었다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 뒤 세 번째 죽음의 고비가 있었다.
한국의 유명한 성악가 오현명 교수를 모시고 워싱톤, 시카고, 애틀랜타 지역에서 ‘실로암 안과병원 개안 수술 모금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가졌다. 음악회를 마친 뒤 오 교수는 독일로 가고 양운국 장로님과 우리 일행은 LA를 경유해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기내에는 연기가 가득 찼고, 승무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승무원들에게 물어 보니 아무 일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30분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비행기 엔진이 고장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3번 엔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4번 것을 3번으로 갈아넣었습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는 목적지로 못 가고 앵커리지 공항에 불시착하겠으니 양해 바랍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