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 왜 자살할까

Google+ LinkedIn Katalk +

자살은 타살이라는 말이 있다. 타살의 무기가 되는 고통이 망각의 늪에 빠지는 죽음만이 희망이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성경의 자살자는 유대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스승 예수를 은 30냥에 판 배신자 가룟유다이다.

뒤늦게 후회하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은 30냥을 도로 던져주고 가룟유다는 스스로 목매죽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빌라도의 재판을 거쳐 유대인들의 외침대로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해 승천하셨다. 예수를 돈에 눈이 어두워 은 30냥에 팔아넘긴 사탄이 된 가룟유다는 지옥의 유황불 속으로 간 것이다. 오늘날 일만악의 뿌리가 되는 돈의 노예들이 가룟유다 뒤를 따르고 있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다만 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으나 가는 순서는 없다. 그러나 사상 감정을 가진 인간은 살아가면서 고통의 멍에를 만난다.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하며 힘차게 살아가야 하는데 닥친 고통과 환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 자살자들을 방지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살던 1950년대 보릿고개시대에 서울 한강다리나 부산 영도다리 난간에 보면 헝겊에 “5분만 참으세요”라는 자살방지 글이 쓰여 있었다. 5분 동안 생각에 잠기다 보면 죽을 마음이 사그라들 수도 있다. 그 무렵은 살기 어려워 빚을 많이 지고 못 갚는 고통을 당하면 못견디고 다 잊어버리는 망각의 함정에 빠진다. 이런 가난의 생활고를 비관하거나 사랑을 하다 실연에 빠지거나 사업실패를 하게 되면 그 고통의 해결길이 죽음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자살한다. 그 자살방법이 옛날은 강에 투신자살을 했으나 오늘날은 독약을 먹는 음독자살을 한다. 승용차 안에서 일가족 자살의 비극도 있다.

1961년도 4.19혁명으로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진 정치책임자 이기붕 일가는 당시 경무대 ‘현 청와대’ 관사에서 부모 아들 두 사람 4명이 큰 아들 이강석이 쏜 권총에 맞아 한가족이 집단자살했다. 4.19묘지 186명의 학생 영령들에 대한 책임 자살이기도 했다. 4.19 정신이 헌법전문에 올라가며 5.16군사정변 이후 나라는 산업화 공업화 되어 국민소득이 높아져 갔다. 현재는 세계 10위권의 잘 사는 나라로 자랑스런 경제대국이 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은 애국가 후렴에 나오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노랫말처럼 아름다운 우리 금수강산에 세계시민이 몰려와 우리 사회에 한글 핏줄 아닌 외국인들이 많다. 이렇게 잘사는 나라인데도 자살자는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 자살률이 1위이다. 1994년부터 2024년까지 30년간의 자살자 통계가 무려 33만 9천35만명에 이른다. 2024년 한해만 해도 자살자가 1만 7천439명이 된다.

아시아권에 자살률 1위의 불명예가 우리 국민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평균 수명률은 우리 나라가 83.3으로 OECD 국가 평균 생존률 81.5보다 높다. 그런데도 자살률이 높은 것은 불명예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래에 자살의 서글픈 모습을 보인 인사로 수필가 이상보 박사 사위 정두언 국회의원, 활동이 활발하던 노회찬 의원, ‘즐거운 사라’ 소설을 쓰고 물의를 빚던 연세대 마광수 퇴임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자살 등이 안타까운 죽음이다. 

문재인 정부 때 이재수 육사 37기 장군의 자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03년도 7월 17일 “엄마 살려줘” 애원하는 8세 딸과 5세 아들을 인천 부평구 청천동 어느 14층 아파트에서 내던져 죽이고 34세 엄마 자신도 3세 딸과 함께 투신 자살한 일가 투신자살 사건이 아직도 내 가슴찢는 비극으로 남아 있다. 여인은 가출 남편을 두고 3남매 부양에 극심한 생활고로 자살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안면도에 묻어달라 유언을 남겼다. 꿈나무들 어린이가 슬피 죽는 이런 비극없는 복지나라 자살없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