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 신학대학교 손경민 교수가 작사·작곡한 ‘행복’ 찬양이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내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내 삶의 행복이라오.
이 땅에서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성도에게 위로를 주는 귀한 찬양입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자녀가 잘되고, 건강이 받쳐줄 때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 의 소유의 행복이 아니라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존재의 행복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르치시기 전 갈릴리의 영적 상태는 목자 없는 양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쁜 삶을 살았으며 예루살렘에 대한 정치적인 힘과 화려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은 전혀 차원이 다른 새 시대 새 행복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으니”라고 가르치실 때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갈릴리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에서 ‘가난하다’라는 말의 뜻은 ‘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겸손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갈급한 심령입니다.
자기 영혼의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거나 일이 잘 풀릴 때 겸손해져야 합니다.
칭찬을 듣고 성공의 궤도를 잘 달리고 있을 때 겸손해야 합니다.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을 때, 이럴 때 나는 배부른 자라고 자랑하는 것은 교만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하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복을 마카리오스라 하는데 슬픔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 덕분에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고로 마음이 가난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했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으며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행복을 다 누려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듯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존재의 행복을 고백하는 성도가 지금 필요합니다.
복음의 사각지대를 찾아가 내가 왜 행복한지 당당하게 고백하는 천국 시민을 하나님은 간절히 찾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이 바로 존재의 행복입니다.
나의 한계와 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영적 겸손이야말로 천국을 소유하는 비결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됩시다. 참 행복을 누립시다. 돈을 주고 건강을 주고 명예를 주어야만 유지되는 ‘구걸하는 행복’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아 갑시다.

<두 가지 행복의 대조>
김희진 목사
<무안 창매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