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마을에는 교회가 없었다. 이웃 마을 하나를 넘어가야 교회가 나타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선 어머니가 아닌 누나들과 함께 걸어서 다녔다. 그 마을 아이들과는 학교도 달랐고, 주일에만 만나는 관계인지라 텃세가 심했다. 예배 후에 집적거리거나 괴롭히기도 했다.
그래도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녔다. 첫째는 예배에 빠진 날에는 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오후에 심한 꾸중과 함께 매를 드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주일학교에서 만난 박순덕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분은 언제나 밝은 미소와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공과 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린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저 선생님 같을 거야’ 하는 마음이 일었다. 꿈쟁이 요셉에 대해 가르치실 때에는 선생님의 얼굴과 요셉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그때는 주일학교 예배 시간이 기다려졌고, 특히 공과 공부 시간이 기다려졌다. 교회학교 교사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박순덕 선생님이 떠오르는 이유다.
그분의 손등에선 항상 은은한 복음의 향기가 났다. 주머니에서 꺼내어 건네주시던 몽당연필 한 자루, 입안 가득 달콤함을 선물하던 알사탕 하나보다 더 좋았던 것은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깊고 맑은 눈망울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저분은 나를 참 소중하게 여기시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랑의 눈길이 있었기에 텃세 심한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도, 십 리 길을 걸어가는 고단함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박순덕 선생님은 내게 성경 지식을 가르쳐준 교사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몸소 보여준 ‘살아있는 복음’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는 목양의 길을 걷고 있다. 문득 서재 창가에 앉아 지난날을 반추할 때면, 거울 앞에 서듯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오늘 나의 양 떼들은 나를 통해 누구를 보고 있는가? 나의 설교와 눈빛, 그리고 삶의 작은 조각들을 통해 그들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있는가?”
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성도들이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수사가 없어서 감동이 메마르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투박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문득문득 배어 나오는 ‘예수님의 흔적’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고후 3:3)라고 고백했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편지, 그 편지가 바로 우리 목회자들의 삶이어야 한다는 준엄한 부르심 앞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때로는 목양의 길이 거칠고 험한 광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진심이 오해받고, 사랑이 거절당하는 아픔 속에서 낙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그 작은 공과 공부 시간을 떠올린다. 선생님의 얼굴 위로 겹쳐 보이던 요셉의 꿈과 예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한다. 한 사람의 진실한 삶이 어린아이의 영혼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거룩한 지도를 그려주었듯, 오늘 나의 인내와 눈물이 누군가에게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임을 믿는다. 그 떨림과 소망을 품고, 나는 오늘도 다시 목양의 길을 걷는다.
김상수 목사
<대전영락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