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 전 1919년 3월 1일!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암울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우리 민족 가운데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한독립만세 운동이었습니다.
역사의 중요한 순간 속에서 사람들은 나 혼자 정의롭게 살아봤자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게 지혜로운 삶이라고 변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의 의인을 주목하십니다. 예레미야 5장은 의인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향해 예루살렘 거리로 다니면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지’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 10명이었는데 예루살렘에는 의인 1명이 조건으로 제시된 것을 볼 때 예루살렘의 죄악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단 한 명의 의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예루살렘 백성과 다를 바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107년 전 3·1 만세운동 때 우리 민족은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라도 빼앗기고 말도 글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도 희생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잡혀가면 어떤 고초를 겪을지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생을 각오하고 거리로 뛰어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교회는 3·1 만세운동의 거점이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어떤 종교들보다도 더 많은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부서지고 수많은 성도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에 가면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 기독교가 점점 힘을 잃었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에는 교회가 줄었지만 1921년 이후로는 교회가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3·1 만세운동을 겪으면서 백성들이 ‘교회야말로 우리 민족이 믿고 의지할 곳이구나,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서야 될 반석이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정신으로 희생했을 때,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이러한 삶의 자세를 107년 전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속에서도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의인들이 계셨기에 우리는 오늘 독립된 자유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멸망을 당했던 예루살렘은 타락한 인간의 영적 무능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온 인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오늘 이 민족을 위해 다시 의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의인의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승민 목사
<부천 원미동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