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블레싱은 오늘도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한다. 무너져가는 아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8년 전, 블레싱센터에 중학교 1학년 E가 찾아왔다.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권하자, 아이는 대뜸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전, 소주 여섯 병인데요.” 어이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웃으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E는 거침없이 자신의 꿈을 말했다.
“난, 뮤지컬 배우가 될 거예요. 멋있잖아요. 잘 나가는 뮤지컬배우가 돼서 돈도 많이 벌고, 부자로 살 거에요. 나는 뭐든지 다 잘할 수 있어요!”
허세 섞인, 당당함으로 말하던 E에게 뮤지컬 배우로서의 특별한 재능이 보이진 않았지만 아이의 눈빛만은 달랐다. 길을 잃은 아이의 자존심과 어디로든 가고 싶어 하는 뜨거운 열망이 그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E는 그 당시 학교 일진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래부터 문제아였던 아이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E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고, 부모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하려 애쓰던 우등생이었다.
늦은 밤까지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고,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성적과 기대 속에서 버텨내던 아이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마음 둘 곳 없던 그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술과 담배, 방황이 일상이 되었다. 공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결국 그는 학교의 일진 무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타까운 그 선택은 아이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E에게 삶을 다시 세워갈 수 있도록 분명한 몇 가지 규칙을 세우고 약속했다.
1. 일진 무리에서 벗어날 것.
2. 술과 담배를 끊고, 레슨 시간을 철저히 지킬 것.
3.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블레싱으로 와서 연습 후 바로 귀가할 것.
우리는 E와 매일 같이 밥을 먹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꾸준히 연습하도록 이끌었다. 연습이 끝나면 귀갓길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최현주 선생님과 나는 집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블레싱센터 밖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와 기다리며 E를 다시 유혹하던 친구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E는 약속을 성실히 지켰고,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년쯤 지난 후, E는 학교 축제에서 당당히 솔로곡을 맡게 되었다. 결석도 잦고, 교복도 입지 않던 아이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자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블레싱 가족들은 두 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E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아이로 자라갔다.
중3이 되자, 우리는 이제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해보자고 권했고, E도 성적 관리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E가 동아 뮤지컬 콩쿠르에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되 3등 안에 들지 못하면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단단히 약속하고 동아 뮤지컬 콩쿠르를 준비했다.
대회를 마친 E에게 전화가 왔다. “단장님, 저 1등 했어요. 하나님이 제 길이 맞다고, 계속하라 하신 거예요.” 전화로 들려오던 그 울먹임 섞인 환호, 그 한마디에 그동안의 기도와 눈물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이후 E는 대한민국 국제 뮤지컬 콩쿠르 3등, 아리인 뮤지컬 콩쿠르 1등, 고등부 동아, 경향 뮤지컬 콩쿠르에서도 장려상을 받으며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더 감사한 것은 상이 아니라, 길을 잃었던 E의 인생을 다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학교폭력 피해자로 학교를 자퇴한 후, 힘겨워하던 내 아들이 E를 통해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E는 매일 내 아이 곁을 지키며 함께 웃고 시간을 보냈다. E는 상처로 마음이 무너진 내 아들의 마음을 받아주고 상처를 덮어주었다. 두 아이는 그렇게 서로를 지켜주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한때 내가 E를 건져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E를 통해 내 아이를 일으키셨고 그 시간동안 나를 훈련시키셨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던 두 아이의 삶 속에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고 계셨다.
오늘도 우리는,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것이 내겐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다.
김연수 단장
<블레싱뮤지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