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을 치르면서 이 처절한 표어가 이 땅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18세기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의 말이라고 알려졌지만, 타민족의 통치를 벗어난 우리 백성들에게 민족자주는 최고의 자유였으며 북한 공산주의 침략의 위협을 물리치는 것 또한 자유의 핵심이 되었기에 이러한 절규가 솟구쳤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로운 나라다. 한때 목숨만큼 귀하게 여겼던 자유를 모든 국민이 맘껏 누린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물론이고 어떠한 사회적 차별도 허용되지 않는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며 헌법과 법률은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 등의 자유를 지켜준다. 그런데도 오늘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하다. 왜 그런가?
자유에 대한 최대, 최악의 위협은 세상의 권력인데 다행히 우리 국민은 자력으로 독재권력을 퇴출시켰다. 그러나 나쁜 권력을 내쫓은 그 자리에 들어선 새 권력도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간섭과 억제를 예사로 행한다. 다스림을 받는 입장에서 권력자의 행위로 내 자유가 상처받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그것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동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권력에 적극적으로 영합하는 무리와 그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파당이 나뉜다. 민주체제 하에서 이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은 말하자면 자유와 자유의 상호잠식이다.
권력관계를 떠나서도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는데 다양한 욕망이 발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과정에서 자유는 필수 요건이 된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누가 부자유를 느낀다면 이는 개인의 욕망에 그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빈곤이 가져오는 욕망의 제약에 대해 불평불만 하는 것을 사회는 어느 정도 용납한다. 문제는 정치집단들이 자기네 권력투쟁의 의제로서 끊임없이 소위 ‘민생문제’를 끄집어내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국민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상투잡이’를 벌이는데 자유의 상실을 당하는 것은 이를 바라보는 국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개인과 집단의 이기심으로 인해 서로에게 강요되는 부자유는 엄청나다. 누구도 자신의 자유가 속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도 젊은이로부터 나이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불구경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옷을 태우고 살을 데이는 형국이다. 각 당파의 끝 모르는 이익추구는 럭비공을 뺏고 빼앗기는 경기장을 연출하는데 관중은 흥미를 잃어가지만 쉽게 자리를 뜰 수도 없다.
이 나라 백성들이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를 닮아간다. 지난 20-30년간의 대한민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폭력적 독재체제를 어렵사리 벗어나고 시작된 좌-우파 자유경쟁이 화합과 타협으로부터 역주행해 상호 파괴적인 극단주의로 치달아가고 있음을 본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고귀한 자유, 민주의 가치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훼손되어가는 것은 진정 가슴 아프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
거죽 만의 자유ㆍ민주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사회의 실상은 과거 독재시대보다 못한 정신적 폭력 지배의 난국을 향해 굴러가고 있다. 모두가 회개할 때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