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 샤워실. 촉수 낮은 전등은 짙은 어둠의 무게가 힘겹다는 듯 파르르 떨고 있다. 숯덩이보다 더 검은 흐느낌이 앙다문 아내의 입술을 밀치고 새어나온다. 울음을 늘키는 아내가 큰 몸 서리를 떤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 껑더리된 몸을 드러낸 채 나는 아내 앞에 서 있다. 요오드 액으로 전신 소독을 하기 위해서다. 퀭한 눈, 살비듬을 잃어버린 양 볼, 간질환 환자 특유의 거무스레한 안색. 어깨와 가슴과 허벅지는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 같다. 단백질 섭취 결핍으로 몸 안에서 ‘제 살 먹기’ 카니발이 벌어진 결과다. 자기 근육을 분해해 단백질로 쓴 것이다. 배는 임산부처럼 불러 발등이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바르르 떨리는 아내 손의 파동이 밀물처럼 달려든다.
나는 뭐라고 그녀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주르르 눈물이 흘러 아내의 손등에 뚝 떨어진다. 아내의 울음소리가 가파르게 솟았다.
병실로 돌아오니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천 년의 세월이 그 끝을 향해 막바지 길을 달려 내려가 새 천 년을 맞이하려는 듯 시간은 주저 없이 흐르고 있다. 이제 7시간만 있으면 나는 수술대 위에 눕는다. 생명은 인간의 권한이 아니다. 밤은 교교한데 잠은 아직 멀리 있다.
밤의 느슨함을 틈타 자동차가 굉음을 날리며 질주한다. 질주하는 자는 아스팔트의 본성인 스피드를 즐기는 걸까, 아니면 인생은 최고의 스피드로 잽싸게 지나버려야 할 광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시사하는 걸까? 지상에 조금 더 지체하려는 나의 안간힘을 비웃기라도 하는 건가? 소음으로 도시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
기증자는 누구일까? 귀띔받은 것은 30대 초반, 남자, 뇌일혈로 뇌사상태. 각막, 폐, 심장, 간, 신장 기증. 강남성모병원이 아닌 시내 다른 병원에 입원 중. 더 이상의 신원은 불고지가 관례이기 때문에 그의 삶과 성품, 취미, 직업, 결혼 여부, 신앙에 대한 정보는 없다.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