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 것을 쉽게 내놓지 못한다. 말로는 쉽지만 본능으로는 손에 쥔 것을 선뜻 내놓기보다 누군가가 달라고 하는 기미만 보여도 움켜쥐게 되는 게 본능이다. 어린아이들에게서 그 본능의 발로를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아이가 과자를 쥐고 있는데 사람이 가까이 가면 느슨했던 손아귀가 바짝 조여지며 경계의 눈빛마저 보이게 된다. 어른들은 그러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더 다가가면 아이는 자지러질 듯이 놀라며 방어태세가 삼엄해진다.
아주 작은 것에 대한 본능적 방어가 이 정도인데 하나밖에 없는 목숨에 있어서야 그 정황을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지 않겠는가? 그런 귀한 목숨을 나라가 어려울 때 아낌없이 내놓고 죽음을 직면한 자리로 뛰쳐나가 오늘의 우리를 지켜낸 숭고한 희생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옷깃을 여민다. 날마다 해도 모자랄 일을 1년에 한 번 나라가 정해서 온 국민이 시간을 바치는 날 현충일이다.
무명용사탑 앞에 오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처연해지는 마음으로 머리가 절로 숙여지고 눈가가 젖어온다. 대부분의 무명용사가 20대 청춘이어서 더 그렇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고국 산천이 위험하다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흔쾌히 적을 물리치고 산화한 귀한 젊은 목숨들,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 가슴은 이미 그 시 속으로 빠져들어가 흐느끼고 있다.
볼이 발그레한 앳된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묻는다. 고개를 들라 우리를 추모하기 전에 너는 지금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라. 네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느냐?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최선이라는 말의 무게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면 네 일과 나라 위한 일이 겹치면 나라 위한 일을 먼저 하느냐? 아니요, 제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머리 숙여 참배할 것이 아니라 네 자리로 돌아가서 그런 일부터 실천해라. 얼굴이 화끈거려 물러 나오면서 돌아서 하늘을 본다. 저 멀리 애국지사 묘역이 보인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찬바람 마다 않고 타국을 떠돌며 독립운동을 이끌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어르신들, 아아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