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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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슐레스케’는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부터 배운 바이올린을 평생 놓지 않은 그는 현재,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제작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오늘날 전 세계 유명 솔리스트들과 유명 오케스트라의 수석 주자들의 손에 들려있다 한다. 그가 쓴 책 『가문비나무의 노래』에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의 바이올린 제작과정 사진이 첨부되어 있기에 쉬운 책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저지대에서 자란 나무는 재료가 되지 못한다고. ‘울림의 소명’을 받는 나무는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을 견딘 나무라고, 그런 환경이 가문비나무에게는 고난이었겠지만 울림에는 축복이라고, 나무는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서만 단단해지기 때문이라고… 아, 그렇구나. 견딘 녀석들만의 ‘힘’이라고나 할까.

유튜브를 뒤적여 자주 듣는 노래 하나가 있다.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백창우 사, 곡)다. 가사의 내용 중에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를 들을 때마다, 삶의 고달픔은 왜 넓이나 높이나 부피가 아닌 무게로 표현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삶이라고 하는 것이 전적으로 짐이라 여겨지기 때문일 게다.

언젠가 TV에서 역도선수들 인터뷰 장면을 보았다. 한 선수에게 기자가 물었는데, “무겁죠?” 싱거운 질문이었다. 선수도 싱겁게 대답을 한다. “무겁죠!” 선수들은 자기 체중의 너댓배에 가까운 무게의 바벨 들었다 놓기를 하루에도 수천 번 반복한다고 한다. 손목과 허리와 무릎에 의지해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을 하는 선수들에게 그 무거움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며 그 운동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선수와 지도자로 40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여자대표팀 감독의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물론 무겁죠. 하지만, 가벼울 때도 있어요. 충분한 훈련과 감정 조절로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을 때는 깃털처럼 가볍기도 하답니다.”

단에 오르면 봉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천근만근의 쇳덩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까지, 그들은 버틴다. 침묵과 집중 속에서 자신을 벼리는 것이며, 힘을 내보는 것이다. 들어 올릴 때까지!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 고난이겠지만, 이런 목재가 ‘울림의 소명’을 받는다 했다. 인생도 그러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때도 있으리라. 견디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힘을 내보자. 이런 이들을 돕겠다며 이천 년 전에 오신 분이 계시다. 그분이 하셨다는, 그래서 이제는 식상할 만도 한 말씀이, 오늘따라 새롭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소종영 목사

<가장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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