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끄트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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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에 가면, ‘땅끝마을’이 있다. 걸어서는 더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가 없는 땅이니 땅끝, 맞다. 인생에도 땅끝이 있다. 다윗도 땅끝 경험을 했던 모양이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시 61:2). 다윗의 땅끝은 어디였을까? 사울에게 쫓긴 광야 어딘가였을까, 아니면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쫓긴 어딘가였을까?

2009년에 세상을 떠난 서강대 장영희 교수는 그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198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를 공개했다. 목발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의 몸으로 그녀는 도서관에서 묵직한 전문서적들을 빌리고 반납하길 수백 번 반복하며 기적적으로 논문을 써낸다. 가제본을 마쳤고, 모든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 반납하거나 폐기한 상태였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차를 마시던 중 그 집에 도둑이 들어 친구의 승용차 트렁크를 털어갔다. 그녀의 논문 가제본도 함께. 이 사실을 안 그녀는 ‘논문, 내 논문’ 하면서 쓰러졌다. 최악이었고 땅끝이었다. 기숙사 침대에 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있던 다섯째 날, 커튼 사이로 빛줄기 하나가 스며들었고,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어슴푸레 어떤 소리를 들었다.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기껏 논문인데.’ 그녀는 일어났고 논문을 다시 썼다. 다시 쓴 논문 첫 페이지 ‘감사의 글’에 논문을 훔쳐 간 도둑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도둑 덕분이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조희선 전도사는 이런 시를 썼다. 제목은 ‘길바닥’이다. ‘주저앉으면 / 바닥이지만 / 일어서면 / 길이 됩니다’ 넉 줄짜리 시가, 어떤 글보다도 강력하다. 땅끝에 주저앉아 있으면 그대로 바닥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며 그 바닥을 딛고 일어서면 길이 된다니, 놀랍지 않은가. 

성경은 땅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간 애굽은 땅끝이었으며,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거기도 땅끝이었다. 38년 된 병자의 땅끝은 베데스다 연못이었다. 성경에서 땅끝 경험 최악을 꼽으라면 당연히, 욥이다. 그의 인생은 땅끝에서 초라하게 마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거기가 그의 끝은 아니었단다. 다시 일어섰으니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는 그가 땅끝까지 감찰하시며”(욥 28:24)라는 고백 속에 비밀이 숨어있다. 거기 땅끝까지 친히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던 것이다. 욥에게만 유독 그리하셨겠는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끄트머리’라는 단어가 있다. 끝이라는 말과 머리라는 말의 합성어이니,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말이렷다. 참 맛깔스런 단어다. 시인 백창우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라는 시를 썼다. 시의 일부는 이렇다.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살다 보면 땅끝에 설 때가 있다. 막장이다. 더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시작점일 것이니. 바닥을 치고 일어나 보자. 끄트머리처럼.

소종영 목사

<가장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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