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25 전쟁 발발 76주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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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지 76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고요한 주일 새벽 미명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인해 동족 상잔의 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아 약 20만 명의 북한군이 야포 및 전투기로 무장하고 대한민국을 남침했다. 

당시 한국군인들은 전차나 전투기도 없이 단지 10만여 명의 치안유지를 위한 보잘 것 없는 병력을 가진 상태였다. 남침 당시 국군 전방 사단중 6사단을 제외하고 제2,5,7사단은 해체된 상태였으며, 수도 서울은 3일만에 점령당하고 울산과 부산 지역을 제외하고 전 국토가 불과 1개월도 안돼 북한 남침으로 초토화 됐으며, 점령당하지 않은 부산과 울산은 피난민들로 물결을 이루는 비참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시점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대한민국을 구하시기 위해 미국 트루만 대통령으로 하여금 UN군을 한국에 급파시키기 위해 UN 긴급 안보 이사회를 소집해 UN군 파견을 결의하게 됐다. 미국을 위시한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 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의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긴급 파견됐다.

6.25 전쟁으로 인해 144만 명의 전쟁희생자가 생겼고, 4만 명의 전쟁고아와 29만 명의 전쟁 미망인, 피납자가 8만5천 명, 양민학살이 13만 명이나 발생됐다. 이같은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부산지방을 제외한 전 국토가 불에 탄 잿더미로 됐으며,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최 빈국으로 전락 됐다. 

“산옆 외따른 골자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엔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간 마지막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이 글은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한 구절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국토가 양분된 상태 속에서 살고 있다. 분단된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며 지속적인 평화와 발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보가 튼튼해야 한다. 

지금 70~80대 노년층의 시니어(senior)들은 일제침략으로 식민지의 비참한 생활도 겪었으며, 6.2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을 겪었다. 부존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실로 볼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은 결코 우연히 이룩된 것이 아님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제 침략과 6.25 전란의 쓰라린 경험을 체험한 70~80대 시니어들이 사라지기 전 우리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시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교육이라 볼 수 있다. 

6.25 전란 76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우리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날로 발전해 가는 나라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6.25 동란의 올바른 역사 인식과 안보의 중요성을 고취 시키는 데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일 때라 본다.

김명한 장로

<대구신광교회 원로,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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