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을 만나는 장소는 단연 국회 청문회장이다. 증인이 답변을 시작하자마자 질문자는 돌연 발언을 중단시키고 분노에 차 막말하고 윽박지르고 일방적인 일장 훈시로 끝내는 익숙한 장면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최소한의 품위와 인격이 결여된 행동이 난무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불통의 정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한류가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 브랜드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시대에 유독 정치는 뒷걸음질하고 있으니 더욱 실망스럽다.
그런데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뜻밖에 우리 정치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단서가 될 사건이 일어났다. 선거일 오후부터 송파구를 비롯한 몇몇 투표장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는데 선관위의 미숙하고 어이없는 대처로 일부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분노한 유권자와 시민들이 투표소를 봉쇄하고 항의시위를 이어갔고, 다음날부터는 개표소인 잠실 올림픽경기장에 수만 명의 청년이 집결해서 부실선거 척결과 선관위 조사를 외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이후 참가자 수가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21일까지도 장기농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인 투표권이 어이없게 박탈됐다는 배신감이 청년층의 분노와 절규를 촉발했고 주요 대학학생회장들이 연이어 시국성명서를 발표할 정도였다.
이들은 1987년의 민주항쟁을 떠올리게 하는 제2의 민주항쟁이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어서 대학가에서 시위가 퍼지고 일부 청년들이 1인시위와 촛불집회를 잇달아 열어가는 등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우리나라 정치에 비쳐오는 희망의 빛을 본다. 당당하고 질서정연하며 이념편향 없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대처하는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수와 진보 모두 기성 정치인은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대화가 아니라 투쟁으로 일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들의 문제 제기를 듣고서야 사안의 중대성을 깨달았다고 말한 것은 그나마 낫다. 물증도 없이 정황증거만으로 과격한 주장을 펴는 부정선거론자들은 청년들의 당당한 주장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여당은 이념에만 눈이 가려져 검찰개혁, 내란척결이라는 편가르기에 매달려 청년들이 제기하는 사안의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기성 정치인들이 이념과 편견에 사로 잡혀있는 동안에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개발도상국 시절에 북한의 실질적인 위협과 당면한 문제와 씨름하던 사람들이다. 이제 세계에서 첨단기술의 문화강국으로 우뚝 선 지금, 민주화와 산업화가 지상과제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런데도 보수의 기성 정치인들은 이미 한물간 공산주의 위협을 두려워하고 있고, 진보세력은 있지도 않은 쿠데타세력과 친일파를 두려워하는 난센스가 우리 정치를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상태에 빠트린 것일지 모른다.
지방선거 결과로 지금 여야에 일어나고 있는 내분은 이러한 구시대의 정치를 청산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당은 아직도 내란척결이라는 허상을 좇는 구시대 운동권 정치인과 싸우고 있고, 야당은 박정희식 근대화의 향수에 젖은 산업화시대의 권위주의적 정치인들이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는 중이다.
2030 청년세대가 이미 선진국이 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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