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묵도를 예배의 첫 순서로 선택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배 현장에서 이 전통을 소중히 지켜내고 있다. 이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해야 할 시대적 과제는 명확하다. 묵도의 전통을 단지 관습적인 행위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이를 확고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지원하고 현장에서 올바르게 시행함으로써 한국교회만의 고유한 ‘묵도의 신학’을 세계 교회에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묵도의 뿌리를 한국의 문화적 토양과 전통 종교가 공유해 온 정(靜)적인 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정적인 영성과 침묵(silence)의 미학은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일본의 신도를 포함한 동양의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품고 있는 보편적 자산이다. 이 정적인 요소야말로 서양의 교회가 흉내낼 수 없는 동양 종교의 독특하고도 신비한 현상이다. 묵도는 한국교회가 서양 교회로부터 복음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심성 저변에 흐르던 침묵의 정서를 기독교적 예배 영성으로 승화시킨 흔적이다.
그렇다면 묵도가 지니는 예배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흔히 오해하듯 묵도는 단순히 소리 내지 않고 개인의 소원을 아뢰는 간구의 시간이 아니다. 또한 오르간이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소리를 감상하며 감정을 정화하는 시간도 아니다. 그리고 마음을 완전히 비워내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묵도는 비워냄을 넘어 거룩한 존재로 채우는 시간이다.
묵도는 하나님을 예배의 절대적인 중심에 모시는 행위다. 예배자의 흩어진 마음을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로 향하게 해, 그분의 현존 앞에 깊이 몰입하는 거룩한 통로다. 지난 과거의 시간 속에서 신실하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해 내고, 삶의 굴곡진 사건마다 신묘막측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조용히 추적하는 시간이다.
참된 묵상이 도달하는 필연적인 종착지는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감사와 찬양이다. 침묵의 깊은 사색 끝에 비로소 상달되는 감사의 찬송이 온 회중의 입술을 통해 이어질 때, 비로소 참된 의미의 예배가 시작된다. 기독교의 예배는 복이나 보상을 기대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받은바 은혜와 복에 대한 응답이 예배다. 묵도를 통해 세상에 붙은 욕심은 떠나가고, 하나님만이 홀로 존귀한 경배의 대상이 된다. 묵도 없이는 예배가 시작될 수 없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