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단오절(음력 5월 5일)은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로 설, 추석, 한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부녀자들이 창포로 머리를 감고 수리떡과 그네뛰기, 씨름 등으로 하루를 즐기며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필자가 지체 장애가 발생한 날이 다섯 살 되던 해 단오날이었다.
그 당시 단오날은 큰 명절이라 새로 사준 단오 옷을 입고 그네 타는 느티나무 아래에 가서 아침부터 앉아 있었다.
집에 귀가시간이 늦어지자 할머님께서 데리러 오셨는데 오래 앉았다가 일어나면 다리가 저려오듯 하는 증세가 나타나 집에 도착하자 그때부터 고열이 나고 앓았던 것이다.
그날부터 치료를 위해 병원 입원생활과 민간요법 치료를 위해 곳곳을 찾아다니며 오랜 치료에도 완치되지 못해 오늘까지 장애로 사회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은사님들의 보살핌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감사하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단오날이 다가오면 지난 추억들이 필자에겐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지나간다.
50여 년 전 우리 집은 신작로 가에 있었던 초가집이었는데 도로가 확장되어 100여 미터 건너편으로 옮겨 지은 집이 지금 필자가 사는 집 ‘고암재’이다.
집 지을 당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디딜방아 절구돌을 여러 가닥 줄을 늘여 잡고 집터다지기를 전통방식으로 했고, 목재를 가져와 직접 현장에서 석가래를 대패질하는 등 목수 두 분이 봄에서 여름까지 두 계절에 걸쳐 정성들여 지어진 한옥이다. 당시 널빤지에 그린 도면이 주택설계도인 셈이었다.
요즘 말로 재건축하자면 재건축 입주까지 거처할 전·월세를 얻어야 하는데 때마침 근처 누에를 키우는 너른 빈 잠실 두 개방이 있어서 준공까지 편리하게 사용해 불편 없이 거처할 수 있었다.
그해는 가뭄이 심해 단오날 전날까지 마을이 고지대여서 모심기를 못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단오날 아침 논물이 가득할 정도로 충분히 비가 내려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을 전체가 모심기가 끝난 후 단오날이면 집집마다 그넷줄 엮을 볏짚을 모아 굵은 그넷줄을 만들어 동네 큰 느티나무에 매달고 남녀노소가 큰소리 지르며 그네 타던 농경사회 세시풍속 모습들이 사라져갔지만, 올해는 마을주민들과 초청손님 등 200여 명 규모가 모이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시대변화에 따라 사라져가던 농경사회 세시풍속이 풍년농사와 주민의 화합,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새롭게 재현되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근 지역 오랜 전통의 길안단오제도 지난해 산불재해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회복되고 재개되는 모든 일상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해마다 단오날이 오면 우리 가곡 ‘그네’를 불렀던 추억이 떠오른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 「그네」, 김말봉 작시, 금수현 작곡
조상인 장로
<안동 지내교회,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