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음에 대한 인간의 온전한 응답이다. 그렇기에 예배의 형식에는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시대적·역사적 배경이 녹아나야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참된 예배 정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유구하고 보편적인 기독교의 전례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미국교회의 형식인 ‘Call to Worship’을 ‘예배로의 부름’이라고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의 문법으로조차 소화되지 않은 이 조잡한 번역의 미국교회 순서가 한국교회에 수입된 배경에는 미국 중심적 사고방식에 철저히 종속된 종교 문화적 사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 무개념의 미국식 모방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입은 영적 손실은 초기 선교 시대부터 한국인의 정서적 토양에서 꽃을 피운 예배 시작 순서인 묵도(默禱)가 배척받았다는 것이다. 일부 미국 유학파 사대주의 학자들은 ‘예배로의 부름’을 한국교회에 이식하기 위해 묵도를 폐지하려 광분했다. 그들이 전면에 내세운 명분은 고작 묵도가 ‘일제의 잔재’라는 유치하고 작위적인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지탱해 온 고유한 신앙 전통을 허물어뜨리고, 그 자리에 겨우 들여놓은 것이 미국교회의 기능적 지시어라는 사실은 한국 기독교의 영적 자존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미국의 역사와 그들의 실용주의 문화적 토양에서 발생한 형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모습은 한국교회가 여전히 주체성을 상실한 채 영적 식민지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예배로의 부름’은 정통 유럽의 역사적 전례 전통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교회만의 지극히 특수한 문화적 변종 산물일 뿐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묵도의 절대적 가치, 즉 인간의 가벼운 입술을 닫고 온전히 하나님의 압도적인 임재만을 기다리던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경건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생명력을 이어갈 유일한 해답과 출구는 오직 묵도뿐이다. 묵도가 사라진 예배는 알맹이가 빠진 종교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영적 고갈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묵도의 영성으로 다시 회복해야 한다. 온통 미국교회 예배문화로 도배되다시피 한, 한국교회 예배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침묵(silence)의 영성인 묵도만이 무너진 강단을 재건하고 한국교회를 다시 민족종교로서 살려낼 유일한 대안이자 영적 보루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