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내 편과 네 편의 철학’을 넘어, 성경이 제시하는 화평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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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문법은 ‘진영 논리’다. 복잡한 사회적 현안들은 ‘내 편인가, 네 편인가’라는 이분법적 칼날 앞에 너무나 쉽게 재단되고 만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이 되어버린다. 교회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한다.

여호수아서 5장 13~14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원수들을 위하느냐”라고 묻는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이처럼 편부터 확인하려 든다. 그러나 군대 대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 인간이 만든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려 하지만, 성경은 도리어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뿌리 깊은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 해법은 무엇인가? 성경은 인간의 조건 없는 연대와 화평을 요구한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리스도를 향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선언한다. 성경적 고찰의 핵심은 스스로를 ‘의인’으로, 상대방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오만을 버리는 데 있다. 로마서 3장 10절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선언 앞에 설 때, 내 편은 무결함하고, 네 편은 절대 악이라는 이 이분법적인 전제는 무너지고 만다.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분열의 담을 허무는 출발점이다.

결국 예수님이 성경을 통해 제시하는 궁극적인 해법은 적대를 환대로 바꾸는 사랑의 실천이다. 내 편만을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의 확장일 뿐이지만, 네 편까지 품는 것은 경계를 허무는 거룩한 도전이다.

지금도 반복되는 교회 안에서 편 나누기를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는 진영의 이익을 위해 소리 높이는 오만을 내려놓고 ‘내가 먼저 진리의 편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가슴 깊이 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된 우리는 갈등을 조장하는 모든 그룹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를 지켜보는 교인들 역시 비판적 감시자로 거듭나야만 한다.

우리에게 네 편이 있기에 내 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호 존중의 철학이 뿌리내릴 때, 우리 사회와 교회 공동체는 비로소 건강한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화평의 길일 것이다.

최환호 장로

<부산노회 장로회장, 감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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