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충무공 이순신을 ‘백전백승의 명장’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뛰어난 전략과 거북선만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경청의 리더십에 있었다.
1592년 한산도대첩을 비롯해 옥포·명량·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스물세 번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한 이순신 장군은 현장의 목소리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는 장수와 병사, 백성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함께 판단한 뒤 최종 결단을 내렸다. 독선이 아닌 경청, 명령이 아닌 소통이 백전백승의 밑바탕이었던 것이다.
최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이순신리더십 국제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배우며 그의 정신은 단순한 군사 전략이 아니라 소통과 청렴, 통찰과 애민이라는 인간 중심의 리더십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장군은 문과 무를 함께 익혔고, 사랑과 원칙을 함께 실천했으며,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했다. 사실을 중시하면서도 직관을 믿었고,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장군이 품었던 결기였다.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 정신은 열세 척의 배로 백삼십여 척의 왜선을 물리친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진정한 리더는 두려움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먼저 책임지는 사람임을 이순신은 몸으로 증명했다.
특히 장군의 삶을 가장 깊이 보여주는 기록은 『난중일기』이다. 그는 승리의 기쁨보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먼저 걱정했고, 자신의 공보다 나라의 앞날을 더 염려했다. 전쟁 한가운데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그의 마음은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순신의 위대함은 뛰어난 전략뿐 아니라 백성을 향한 책임감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이어 찾은 해군기지에서는 안중근 의사 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이 한마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자유와 평화는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군인의 희생과 헌신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손원일 제독이 대한민국 해군의 기틀을 세웠다면, 지덕칠 중사와 이인호 소령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전우를 살리는 군인정신을 보여주었다. 해군사관학교는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대의 해군 장교를 길러내고 있다. 첨단 이지스 구축함보다 더 강한 전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의 정신임을 그곳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는 풍요와 평화에 익숙해지며 안보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는 나라를 지킬 힘이 약해질 때 자유도 함께 무너졌음을 수없이 증명해 왔다. 국방은 군인만의 몫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이순신 장군의 경청은 단순히 남의 말을 잘 듣는 태도가 아니었다.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부하를 신뢰하며, 현실을 냉철하게 살핀 뒤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책임의 리더십이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갈등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이러한 리더십은 더욱 절실하다.
귀를 여는 지도자가 사람을 얻고, 사람을 얻는 지도자가 나라를 지킨다. 충무공 이순신의 경청의 리더십은 430여 년이 지난 오늘도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장 위대한 국가의 자산이며, 우리 후손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시대의 정신이다.
이상진 장로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부회장, 대구중앙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