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예배와 경배를 뜻하는 가장 본질적인 단어는 히브리어 ‘아바드’()다. 이 단어는 종이 주인 앞에 납작 엎드려 복종하고 ‘섬김’의 삶을 바치는 자세를 의미한다. 예배는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자리다. 그렇기에 예배의 첫 문을 여는 묵도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끄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경건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예배 시작 풍경은 이와 사뭇 다르다. 요란한 찬양도 문제지만, 언제부터인가 예배의 도입부를 이끄는 성가대의 송영이 지나치게 웅장하고 화려해졌다. 화려해진 송영은 예배의 본질보다 청각적 자극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치 대형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서곡처럼 연주되는 송영은 예배자들을 하나님 앞이 아니라 성가대의 무대 앞으로 인도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예배자들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이는 대신, 성가대의 화려한 기교와 압도적인 성량에 마음과 귀를 뺏겨 자신도 모르게 예배자가 아닌 관객으로 전락하고 만다.
예배의 본질은 비움과 낮아짐에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피조물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반응은 자신의 작음을 고백하는 고요한 경외감이다. 지나치게 시끄럽고 과장된 송영은 이 경외에 찬 침묵을 방해한다. 귀를 자극하는 화려한 음악 속에서 예배자들은 하나님과의 내밀한 만남을 준비하기도 전에 청각적 피로감을 느끼며, 정작 마주해야 할 하나님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된다.
송영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여야지, 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가대의 송영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커지는 원인이 인간의 기량을 뽐내려는 잠재적 욕망이나, 예배를 세련된 공연처럼 착각해 이를 매끄럽게 포장하려는 조급함에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예배를 위해 필요한 음악은 귀를 사로잡는 웅장한 사운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기다리는 깊은 침묵을 돕는 세미한 소리다.
예배를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인위적인 화려함을 거두고, 낮고 고요한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성가대에게 주어진 송영의 자리는 예배자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거룩하게 인도하는 잔잔한 안내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예배의 첫 시간에 인간의 화려한 목소리를 낮추고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는 겸손을 회복할 때 비로소 온전한 경배가 시작될 수 있다. 사일런스(silence)가 예배의 시작임을 명심하라.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