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근거로 한 개혁신학은 믿음의 부모가 자녀 인생의 ‘해결사’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진정한 해결사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인도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믿음의 부모가 영적 구원을 위해 책임져야 할 우선적 대상은 자녀임을 가르쳤고, 존 칼빈도 기독교에 대한 인지적 기본 지식과 삶의 실천, 그리고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독트리나(doctrina)를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일차적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조선 선교 초기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서간집과 매일신보를 통해 부모는 자녀의 인생길을 책임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평양대부흥 운동의 리더였던 길선주 목사님 역시 부모에게 주어진 사명은 자녀 인생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결해주는 자가 아니라 자녀 스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걸어가도록 영적 유산을 물려주는 신실한 안내자가 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자녀 인생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며, 부모에게 맡기신 사명은 하나님께서 자녀의 인생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그려가실 때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거룩한 붓이 되어 쓰임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시 127:3)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 기업으로 사용된 ‘나할라’((נַחֲלָה))라는 단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재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에 돈을 주고 거래할 수 있는 일반 재산인 ‘첼렉’((חֵלֶק))과 구별되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부모들에게 선명한 자녀양육의 원리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녀가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가 임의로 세상에 내어줄 수 없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께 속한 기업인 자녀의 삶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시며 세워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현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은 자녀를 내 소유나 세상의 가치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주권 아래 놓인 ‘하나님의 거룩한 기업’으로 인정하며 온전히 그분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은 자녀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선언한 다음 문장에 이렇게 연결해 선언합니다.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여기서 말하는 상급이라는 히브리어 ‘사카르’((שָׂכָר)는 ‘수고의 대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으로 인정해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린다는 것은 자녀의 청지기로서 부름받은 합당한 수고를 성실히 감당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지혜로운 정원사는 자라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지만 동시에 계절 따라 쏟아야 할 자신의 수고를 신실히 감당하는 것처럼, 부모는 자녀 인생의 참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함과 동시에 주어진 양육의 계절 동안 기꺼이 헌신의 땀방울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천 년 교회사 역시 이 말씀 앞에 순종했던 믿음의 부모세대를 통해 강력한 자녀세대를 세워 가셨음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혁신학을 기반으로 신앙을 지켜갔던 프랑스 위그노 부모세대들은 100년이 넘는 광야교회 시대의 탄압 속에서도 매일 말씀과 찬송으로 예배하며 자녀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가르치고 양육했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은 자신들이 망명해 뿌리내린 국가들에서 제조업, 정밀 기술, 금융, 산업혁명 등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여호와의 기업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동일한 성경적 언약을 신뢰할 때 아브라함은 이삭을, 요게벳은 모세를, 한나는 사무엘을 여호와의 기업으로 세워냈습니다. 자녀의 삶을 사랑하는 만큼 함부로 그들 삶의 해결사가 되려 하지 않고, 진정한 해결사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부모의 걸음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교회 안에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실 여호와의 기업을 크게 세워가실 줄 믿습니다.
신형섭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