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인간의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시작되는 예배

Google+ LinkedIn Katalk +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 서두는 참담할 정도로 경박해지고 세속화되었다. 성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맞닥뜨리는 것은 거룩한 정적이 아니라, 세속의 번잡함을 그대로 들여온 소란이다. 예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교인들 사이에 이어지는 사적인 잡담과 친교, 안내위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무대를 채우는 화려한 조명과 자극적인 연주 소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가로막는다.

예배를 앞둔 시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영적 경건함은 사라지고, 마치 대중문화의 콘서트장이나 세속 이벤트의 카운트다운을 연상시키는 경망스러운 연출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청중의 감흥을 유도하기 위해 소리를 돋우는 현대 예배의 행태는, 인간의 감정을 자극해 만족을 주려는 소비자 중심주의적 세속성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 자아를 비우는 거룩한 절제 대신, 자기 만족적인 소음과 인위적인 흥분만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러한 경박함과 세속적 행태를 깨뜨리고 예배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한국교회가 지켜온 묵도(默禱)의 당위성을 재발견하는 데 있다. 침묵(Silence)은 소리의 공백이 아니라 인간 소리의 완전한 부재, 곧 거룩한 정적(聖寂)에서 출발한다. 신학적으로 침묵은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자리이자,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울려 퍼지는 거룩한 공간이다. 맥스 피카드(Max Picard, 1888~1965)가 그 대표작 『침묵의 세계』에서 지적했듯, 침묵은 단순한 음성의 중단이 아니라 세상보다 먼저 존재했던 자율적이고 객관적인 존재의 원형적 바탕이다. 인간의 언어는 언제나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침묵은 그 불완전한 자아를 비워내는 거룩한 작업이다. 

교부 전통과 영성학에서 침묵은 위-디오니시오스(Pseudo-Dionysius the Areopagite, 5세기경)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로 대표되는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의 출발점이다. 인간의 고작 몇 마디 언어로 감히 다 담을 수 없는 창조주의 무한함 앞에서 예배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자세는 스스로 말과 소리를 멈추는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호렙산의 강한 바람과 지진, 불 속이 아닌 “세미한 소리”(왕상 19:12)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듯, 침묵은 내면의 소란과 세속의 소음을 잠재우고 하나님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추는 영적 훈련이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춰야 예배가 시작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