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여행해 보면 로마는 기원전 3세기부터 가도(街道,Main Road, 당시로는 고속도로인 셈이다)를 건설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간선 도로만 8만㎞에 지선(支線)까지 합하면 15만㎞나 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같은 시대에 동양인 중국에서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았다. 16세기 명 나라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무려 5천㎞나 되는 대단한 성벽(城壁)이다. 성벽(城壁)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한다. 가도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한다.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사람의 건강도 혈관에 흐르는 피가 건강해야 한다. 국가의 건강도 혈맥(血脈)과 같은 도로망이 필요하다. 로마가 천 년 제국을 이어온 힘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에 의한 평화)는 300년 이상 지속되었다. 로마의 국력은 가도에서 나온 측면이 강하다.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패자(敗者)와 강화(講和) 조약을 맺는다. 다른 국가와 다르게 로마는 정복한 국가를 핍박하거나 지배하지 않았다. <로마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로마의 힘은 패자(敗者)까지도 포용(包容), 동화(同化)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로마 가도는 그 위에 아스팔트를 해서 국도(國道)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의 건축이나 토목 사업은 견고함과 편리함이 대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G Plinius)는 “그리스의 조각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일상생활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매사에 실용성을 추구했던 로마인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로마는 인간에게 실용적인 문화를 추구했다.
로마 가도는 군단(軍團)의 이동, 행군(行軍), 경제와 인적 교류에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정복한 땅에도 가도를 건설했다. 광대한 제국에 가도의 네트워크를 거미줄처럼 깔았다. 후에는 약 30만㎞에 이르렀다. 로마인들이 인프라를 구축한 것은 가도만이 아니다. 목욕탕, 병원, 수도 등도 기원전부터 건설했다. 로마인들은 매일 목욕을 즐기며 살았다. 목욕탕에는 정원, 도서관, 미술관, 열탕실, 온탕실, 냉탕실, 수영장과 분수(噴水) 등 말 그대로 레저(Leisure) 시설을 갖추었다. 사치는 사람을 타락하게 만든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 Gibbon)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로마는 목욕탕에 의해 망했다”고 기록했다.
바티칸 미술관의 보배라고 일컫는 ‘라오콘 군상’(Laocoon Group),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이 자랑하는 조각품 ‘파르네세(Farnese)의 소’도 목욕탕 유적에서 발굴된 것을 보면 그 시설의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진시황은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로마의 황제들은 장수(長壽)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힘쓰지 않았다. 황제나 귀족들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고 깨달아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는 방법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끝낸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가도 주변에 무덤을 만들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묘비(墓碑)에 쓰인 글을 읽는다. 대부분의 귀족과 로마인들은 죽음을 자연의 순리(順理)로 받아들이며 편안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맞이했다. 로마인들이 이런 인생관, 의식을 갖게 된 데는 기독교가 국교(國敎)가 된 이후에 받은 신앙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마 제국의 가장 위대한 유산(遺産)은 유럽 대륙에 뻗은 ‘도로망’이다. 도로는 제국의 신경망(神經網)이었다. 로마의 가도(街道)는 사도 바울이 이방인(異邦人)을 향한 복음 전파에 아주 긴요(緊要)하게 이용되었다. ‘여호와 이레’(Yahweh-Jireh) 우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攝理)를 본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