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기와 문명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세계 경영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이기고 지는 것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의 흥망성쇠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영원한 제국을 꿈꾸었던 앗수르와 바벨론은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경영 키워드는 ‘숫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제국의 기본 동력은 경제 숫자와 국방 숫자입니다.
원래 페르시아는 변변한 시장도 하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고레스 왕이 제국을 건설하면서 나라가 부강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황금의 제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가 되었고 군인 숫자에도 자신이 넘쳤습니다. 다리오 왕 때에는 40만 명에 가까운 군인들을 이끌고 그리스를 점령하러 원정을 떠났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아버지 다리오 왕이 이루지 못한 그리스 점령을 위해 70만 명의 군인을 동원했습니다. 그렇게 대군을 자랑하던 페르시아 제국도 훗날 다레이오스 3세 때, 알렉산더의 4만 명의 군대를 무시하다가 결국 무참히 패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레위기에서 율법을 지켜 행하면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이 나서 묵은 곡식을 그만 먹을 것이며, 적이 침략해도 다섯이 백을 쫓고, 백이 만을 쫓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각 나라와 민족의 경제적 안정과 국가방위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사람, 하나의 숫자가 소중하다는 생각 없이 사람 숫자의 많음과 경제 수치의 크기로 제국주의를 꿈꾸는 것은 결국 하룻밤의 꿈에 불과합니다. 헬라 제국의 경영 키워드는 ‘융합’이었습니다.
헬라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는 그리스의 철학과 동방의 문화를 융합해 새로운 문화인 헬레니즘을 만들어 널리 퍼뜨리고자 했습니다. 앗수르가 민족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헬라는 세계동포주의에 기초한 수평적 융합을 이루어 민족의 경계를 해체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각 민족의 균형과 조화는 제국적 융합이 아닌, 제사장 나라 융합으로 가능합니다. 제사장 나라 융합이란 ‘각기 종류대로’이되 수평적으로,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라는 동질적 연대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마 제국의 경영 키워드는 ‘관용’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화폐를 만들며 앞면에는 자기 얼굴을 새기고 뒷면에는 관용이라는 글자 새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노예들을 철저히 배제한 로마 귀족 중심의 관용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국과 관용은 처음부터 함께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제국 자체가 이미 깨진 평화를 전제로 하는데 거기에 어떻게 관용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관용은 ‘십자가의 관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관용입니다. 더 나아가 도망한 노예들을 본보기로 처형하던 로마의 형틀인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죽으심으로 진정한 관용을 보여주셨습니다.
조병호 목사
<통독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