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들어 눈길이 가는 곳마다 붉은 배롱나무 꽃들이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이 반갑고 더위에 지치는 몸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듯해서 고맙다. 조경을 하는 사람들이 근년들어 배롱나무를 많이 선호하게 된 것이 지구온난화 현상과 관계가 있지 않나 짐작해 본다.
이젠 우리나라도 ‘아열대성’ 기온에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실제로 올여름 7월말에 경남 양산이 섭씨 40도를 넘기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이 펄펄 끓는 혹서를 겪고 있다. 심지어 인기 해수욕장에서마저 한낮에는 백사장의 뜨거운 모래를 견디지 못해 피서객들이 그늘을 찾는다고 하니 오로지 배롱나무 붉은 꽃들만 제철을 만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배롱나무는 원래 백일홍이 그 이름인데 초본 백일홍과 구분하느라 목백일홍이라고 불렸고 다시 백일홍나무로 또 배롱나무로 음이 변했다는 설명이다. 맨질맨질 윤기나는 줄기며 특히 9월이 다 가도록 길게 길게 피고지고 하는 끈기가 나를 포함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받기에 충분하고 남음이 있다.
예전에는 여름에 칸나와 글라디올러스가 눈길을 끌었는데 요즘엔 웬일인지 그 화려한 자태를 보기 어렵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덕수궁(원래 경운궁)에 신식 궁전을 짓기로 해 독일인 건축가에 설계를 의뢰해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석조전이 건립되었는데 어느 시점에 배롱나무들이 심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봄철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수양벚나무와 함께 오늘엔 이 궁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땅에 처음 돌로 지은 전각 석조전(石造殿)의 건축기간은 불행히도 조선 500년 사직이 막을 내리던 시기와 일치해 건물이 공식 준공된 1910년은 바로 한일합방 국치 연도가 된다.
따라서 고종도 순종도 재위 중에는 이 궁전을 사용하지 못했고 일제 강점 후 일본으로 데려간 영친 왕이 선왕들의 승하시에 귀국해 잠시 석조전에 체류했었다고 한다.
일제는 이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했고 해방 후에는 한 때 미소공동위원회 장소로도 쓰였다. 정부수립후 문화재 관계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석조전의 인테리어와 기물들을 복원하는데 많은 수고를 기울였고 이제는 완벽한 모습을 되찾은 이 멋진 궁전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데, 다만 인터넷 예약을 요하기 때문에 방문이 쉽지 않다. 우리 독자들을 위해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현장예약’도 받아주니 출입문에 들어가 미리 방문시간을 정해 이름을 올리고 그 시간에 찾아가면 입장이 가능하다.
안에 들어가면 복도로 이어진 집무실과 대기실, 접견실이 있는 1 층과 침실 등 사적 공간이 있는 2 층이 의외로 상당히 넓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가유산청 직원의 세세한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돌아보는 방문자는 누구나 오늘까지 이어지는 굴곡진 역사에 마음이 착잡하다. 그러나 2층 베란다에 서서 덕수궁의 너른 뜰을 조망하면 눈앞에 펼쳐진 배롱나무 붉은 꽃들의 군무에 새 힘을 얻는다. 그리고 내 조국의 희망찬 앞날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