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예는 철회가 아니다
다행히 「종교 지도자 양성 대학법인 지정 고시」 개정안도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행정예고 이후 한국교회와 해당 대학, 학교법인 등이 잇달아 문제를 제기했고, 교육부는 보다 폭넓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며 개정을 유예했다.
특히 (사)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는 그동안 축적해 온 연구를 토대로 고시 개정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재검토를 요청해 왔다. 전문적인 연구와 정책적 대안 제시가 뒷받침될 때 기독교학교의 제도적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유예는 철회가 아니다. 교육부가 개정 자체를 철회한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의견수렴을 위해 시행을 미룬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대학의 교육과정 가운데 무엇을 종교지도자 양성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교회음악학과 사례가 보여주듯, 신학대학의 교육과정은 언제든 일반적인 학문분류 기준에 따라 다시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안정은 제도가 완전히 보장한 안전이라기보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유예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관건이다. 개별 대학이 복잡한 법과 제도의 변화에 각각 대응하도록 맡겨 둬서는 안 된다. 교단과 신학대학, 기독교학교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하고 대응해 신학대학의 설립 목적과 특수성이 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 신학대학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이번 사안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여준다. 기독교학교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에서 이제 신학대학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교수 임용의 자율성 문제가 기독 종합대학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의 제도적 지위뿐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교육을 ‘종교지도자 양성’으로 인정할 것인가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기독교학교의 정체성을 지켜온 가장 안쪽의 울타리까지 물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비롯한 교단 신학대학의 문제는 한두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신학대학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며, 따라서 신학대학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교회의 신학적·목회적 기반이 흔들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신학대학의 문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신학대학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현실 속에서 학생 모집과 대학 운영을 위해 학과를 다양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이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만큼은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의 신학대학은 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대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해 맡기신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를 길러내기 위해 세워진 대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외적으로는 신학대학의 설립 목적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지켜내야 하고, 내적으로는 대학 스스로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과 교육적 사명을 더욱 분명히 세워가야 한다.
기독대학의 위기는 이제 신학대학의 문 앞까지 와 있다. 제도적으로 보호받아 왔던 신학대학조차 더 이상 안전지대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 이상 신학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함승수 교수
<명지대학교,
사)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사무총장,
동안교회 협동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