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미 공군 중위 제임스 휘태커가 탄 비행기가 태평양에 추락했습니다. 네 명의 생존자는 구명보트에서 물 한 모금 없이 표류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한 끝에 바람이 불고 잠깐의 소나기도 내렸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다시 불어온 바람도 비구름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절망하던 그들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름 없는 그 바람이 보트를 가까운 섬으로 밀어준 것입니다.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 바람으로 살아났습니다.
삶에는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답이 오지 않아 모든 것이 헛된 듯 보일 때가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따르지 않고, 기도와 소망마저 공중에 흩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원하는 구름이 없다고 해서 길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바람이 다른 방향에서 우리를 살 길로 이끕니다.
시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들을 맞은 것은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긴 여정 끝에 마주한 현실은 실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닦으며 밭을 갈고, 먹을 양식마저 아껴 남긴 씨앗을 뿌렸습니다. 기쁨의 수확은 고난이 없던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자기 몫의 씨앗을 뿌린 이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공을 너무 빠르게, 너무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좋은 성적, 안정된 직장, 높은 수입, 빠른 성취가 인생의 가치를 가르는 잣대가 되면서 실패는 곧 낙오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작은 좌절에도 마음은 쉽게 무너지고, 비교와 불안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임무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권면합니다. 이는 막연히 기다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힘든 때에도 해야 할 일을 멈추지 말라는 뜻입니다. 좌절한 자리에서 다시 하루를 살아내고, 관계를 회복하며, 작은 책임을 다하고, 다음을 위한 씨앗을 남기는 일입니다.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그 수고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단만이 아닙니다. 하루의 리듬을 지키고, 도움을 청하며, 실패의 경험을 배움으로 다시 돌아보는 작은 실천입니다. 한 번의 실패가 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고난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오늘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혹시 지금 근심과 실패의 한가운데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탓하며 주저앉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붙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눈물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다시 걸어가기 위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는 분이며(고전 10:13), 우리가 보지 못한 길에서도 일하십니다. 구름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총체적 난국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실 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와 있을지 모릅니다.
김규 목사
<양평동교회 원로>


